입력 : 2025.04.07 15:36
●전시명: '필립 파레노 개인전'
●기간: 4. 12 ─ 6. 1
●장소: 조현화랑 해운대(달맞이길 65번길 171)


프랑스 작가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의 부산 첫 개인전이 조현화랑에서 4월 12일 문을 연다. 조현화랑의 이번 전시는 다양한 동시대 미디어 아트들을 선보이고자 하는 기획 의도로 부산 전역의 국공립, 사립 미술관, 갤러리, 대안공간 등 다양한 미술 관련 기관들이 합심하여서 참여하는 디지털·미디어 아트 전시 ‘루프 랩 부산(Loop Lab Busan)’의 일환이다. 조현화랑은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달 서울에 확장 이전한 독일의 갤러리 에스더쉬퍼와 긴밀하게 협업했다. 두 갤러리의 협업 결과 이번 전시에서는 필립 파레노의 대표 작품인 마키(Marquee) 시리즈가 설치되었고, 영상 작업도 만나볼 수 있다.
필립 파레노는 전시라는 형식과 그 안에 놓이는 작품들의 관계에 대해 오랜 시간 고찰해 왔다. 그에게 전시는 단순한 프리젠테이션 방식이 아니다. 필립 파레노에게 전시는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체이자 다층적 의미로 해석할수 있다. 조각, 드로잉,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품들로 하나의 전시가 구성되고, 각 작품은 개별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전시라는 통합적인 구조 안에서만 가질 수 있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다른 작품들과 맺게 되는 상호 맥락과 관객들이 이들 작품과 조우했을 때 만들어내는 대화까지 포함되어 다층적인 그의 작품들은 보다 포괄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전시장 1층에서는 《귀머거리의 집(La Quinta del Sordo)》(2021)이 상영된다. 다소 실험적으로 보이는 이 영상 작업은 이제는 허물어진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가 살았던 집을 배경으로 공간과 이미지, 그리고 시간과의 관계를 탐구한 작품이다. 고야는 1819년부터 망명 직전인 1824년까지 소위 ‘귀머거리의 집 (La Quinta del Sordo)’에 살면서 ‘검은 그림 (Las Pinturas Negras)’ 연작을 제작했다. 이 집은 1909년 철거되었지만, 당시 벽에서 떼어낸 고야의 그림들은 현재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보존되어 있다. 필립 파레노는 초고속 카메라와 3D 기술을 활용해 철거된 고야의 집을 가상으로 구성했다. 시각적 재구성을 넘어 과거 이 집에서 울렸을 법한 소리를 복원하는 방식으로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공간을 소리와 빛을 통해 현재로 불러왔다. 가상의 이미지들이 특별히 고안된 기계 장치를 통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또다시 나타나는 《귀머거리의 집》은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역동적 관계를 형성하고, 기억과 시각적 재현, 그리고 이미지 존재 방식을 재고해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감각적 지평을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한다.

2층에는 깜빡이며 움직이는 작품 마키(Marquee) 시리즈가 설치되어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키네틱 작품으로 변모되었다. 전통적인 극장 간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으로 초기 할리우드 영화관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연상시키면서도 문자나 특정 메시지가 담지지 않은 섬광의 찰나로만 구성되었다. 순수한 빛과 구조적인 형태가 조합된 이 작품은 관객의 시선과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사이키델릭한 풍경을 연출한다. 전시 공간과 작품, 관람객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마키는 필립 파레노가 상상한 메타 세계가 시각적으로 구현된 오늘의 현실이다.
기존의 전시 형식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독창적인 실험을 지속하는 필립 파레노는 1990년대부터 뉴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비선형적 서사 구조와 실험적 전시 형식으로 현대 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기여해 왔다.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 파리의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등 주요 미술 기관에서 전시를 개최했으며, 2019년 MoMA 커미션 작업 <에코 Echo>에서 데이터와 감각을 결합한 자율적 존재를 선보이며 기술과 인간 경험의 경계에 도전했고, 2024년 리움 미술관에서 열린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의 개인전 <보이스 Voice>에서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이미지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필립 파레노의 몰입형 세계를 선보였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조현화랑에서의 전시는 부산이라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필립 파레노의 독창적인 미학을 새롭게 조명되며, 관객들에게 작품을 감상하는 새로운 방식과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는 6월 1일까지.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