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3.14 17:43
‘ACF(Art Chosun Focus)’
국내외 동시대 참여 작가 27인 15회 연재
3월 19일부터 3월 23일까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컬쳐파크

※편집자주
ART CHOSUN, TV CHOSUN 미디어 양사가 공동 주최하고 ACS(아트조선스페이스), 프로젝트더스카이가 공동 기획한 ‘ACF(Art Chosun Focus)’가 3월 19일부터 3월 23일까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컬쳐파크에서 열린다.
참여 작가는 27인으로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이 선정돼 행사 기간 중 전시된다. 이에, 본지는 각 작품을 관람하기 전, 미리 알아두면 좋을 작가의 작업관을 요약해 설명한다. 해당 기사는 전시 시작 전까지 15회에 걸쳐 연재된다.

“점은 새로운 점을 부르고 그리고 선으로 연장된다. 모든 것은 점과 선의 집합과 산란의 광경이다. 존재하는 것은 점이며 산다는 것은 선이기 때문에 나도 역시 점이며 선이다. 내가 표현하는 점도 항상 새로운 생명체가 될 것이다.”
물감을 흠뻑 적신 붓을 캔버스 위에 척 올리곤 그 붓을 천천히 아래로 끌어내린다. 필선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차 소멸되듯 서서히 자취를 감추며 잔잔히 일렁이는 수면처럼 고요한 파동을 선사한다. 그리곤 다시 붓에 물감을 묻혀 또 다른 필선으로써 이 행위를 거듭한다.
이우환(89)의 ‘From Line(선으로부터)’은 캔버스 바탕에 파란색 선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길게 내려그은 흔적이 담겨있다. 선의 굵기와 형태는 거의 동일하며 선들의 간격도 일정한 것이 조형적 특징으로, 간단명료하며 단조로운 구성이지만 그 이면에는 담백하고도 무한한 철학적 성찰이 내재돼 있다. 희끄무레한 선들은 오히려 이우환이 의도한 본질적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데, 이 선들은 기와 생명력의 기원이자 출발점이며 이들을 재차 그음으로써 작가는 무위자연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고자 한다.
간단하지만 복잡하고, 쉽지만 어려운 그의 그림에 오늘날 아트러버들은 열광한다. 이러한 그의 인기는 BTS의 리더 RM의 ‘최애 작가’, ‘국내 생존 작가 중 가장 비싼 작가’란 수식으로 입증된다. 특히 2023년에는 한국 미술품 경매 낙찰총액 1위 주인공으로, 그 금액이 무려 150억원에 이른다. 2위 쿠사마 야요이 89억원, 3위 김환기 57억원과 비교해 압도적인 수치다.
작가는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며 당시 문인으로 활동했던 황동초로부터 시서화를 배웠다. 이때 습득한 전통 서예가 후에 선을 지속적으로 그리는 행위와 연결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장해서는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에 진학하지만 1년 만에 중퇴 후, 도일해 일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60년대 말부터 일본 화단에서 모노하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해당 운동의 이론을 정립하고 평론가로서 활약하기도 했다.

“숯은 나에게 있어 변하지 않는 바탕이 되고 나의 감성은 손을 빌려 선을 새긴다.”
숯과 수묵으로써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배(69). 그가 숯을 작업의 재료로 택하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1989년 도불해 파리에 터를 잡은 작가에게 당시 자신의 정체성, 나아가 한국의 전통성을 탐구하고 구현해내기란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우연히 숯을 접한 이배는 숯에서 어린 시절 자연을 벗 삼아 뛰놀던 자신을 발견한다. 한국의 자연과 고향 그리고 한국 정서를 함축하고 있는 숯은 이때부터 이배의 작업에서 가장 주요한 소재가 됐다.

그의 화면에는 색이 없다. 오로지 흑백으로만 한국의 정신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고결함을 상징하는 문인화의 주된 화제인 사군자를 보아도 난초와 대나무를 굳이 녹색으로 칠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배의 숯덩어리는 무한한 검정의 획이 되고 작품이 놓인 공간은 이를 받쳐주는 여백으로 작동된다.
시간성과 신체성 또한 그의 작업에 큰 영역을 차지한다. 이배에게 시간성은 ‘멈춤’이 아닌 ‘지속’과 ‘영속’이다. 숯이 되기 전, 소나무의 수명은 길게는 100년이 넘는데, 나무가 죽어 썩기 전 숯으로 구워지면 그 수명은 수천 년으로 연장된다. 무한한 시간성이 숯에 응축돼 있는 이유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 계속 생동하고 지속되는 태도를 대변하는 오브제이기도 하다.
현대미술을 ‘만남의 과정’이라고 이야기 하는 이배는 자신의 작품이 관객과 작가 사이에서 생동하며 연결하는 역할을 희망해 왔다. 전시장이라는 특수하게 설정된 공간에서 사람들은 현실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세계에 심취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ACF’는 숯으로 한국의 전통성에 대해 일관되고 지속성 있는 태도로 임해온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작가와 함께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