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F 프라이빗 노트] 8장 – 김홍주·김윤신·최명영

  • 김현 기자

입력 : 2025.03.07 17:00

‘ACF(Art Chosun Focus)’
국내외 동시대 참여 작가 27인 15회 연재
3월 19일부터 3월 23일까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컬쳐파크

‘ACF(Art Chosun Focus)’ 포스터. /아트조선
 
※편집자주
ART CHOSUN, TV CHOSUN 미디어 양사가 공동 주최하고 ACS(아트조선스페이스), 프로젝트더스카이가 공동 기획한 ‘ACF(Art Chosun Focus)’가 3월 19일부터 3월 23일까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컬쳐파크에서 열린다.
참여 작가는 27인으로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이 선정돼 행사 기간 중 전시된다. 이에, 본지는 각 작품을 관람하기 전, 미리 알아두면 좋을 작가의 작업관을 요약해 설명한다. 해당 기사는 전시 시작 전까지 15회에 걸쳐 연재된다.
 
김홍주 작가 프로필 사진. /아트조선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면 수천 번 넘게 그어낸 선이 보인다.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간다. 색도, 길이도 다르다. 캔버스, 종이, 한지 등 재료를 가리지도 않는다. 김홍주(80)는 그저 반복적인 드로잉을 통해 관람객 앞에 자신만의 감각을 펼쳐놓을 뿐이다.
 
작품으로부터 한 발 떨어지면 무한한 선이 만들어낸 형상이 보다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작품이 주는 정서와 분위기가 한층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또한 형형색색의 선이 겹쳐지며 만들어낸 총체적인 ‘색의 합’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작가 고유의 순수함을 표상한다.
 
김홍주, Untitled, 2021, Acrylic on canvas, 192×160cm. /아트조선
김홍주, Untitled, 2022, Acrylic on cotton on paper, 150×186cm. /아트조선
 
한편, 작가는 1969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1년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당시 개념미술을 연구하던 현대미술그룹 S.T에 참여하며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관념이 주가 되는 개념미술의 논의에 피로감을 느껴 S.T를 탈퇴하고 보다 근본적인 드로잉에 몰두하며 다양한 회화적 실험에 나선다.
 
1970년대에는 주로 오브제와 이미지를 결합한 ‘사물로서의 회화’ 작업을 발표한다. 청계천의 고물상에서 창문틀과 거울, 차 유리창과 같이 버려진 물건을 사다가 합판과 천을 덧대고 그 위에 극사실적 형상을 그려나간 그의 초기 작업은 캔버스라는 ‘그리기’의 틀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였다. 1996년에는 꽃과 잎, 낙엽처럼 자연물에서 가져온 형상을 회화에 도입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후기 작업은 세밀한 선을 무수히 쌓아 올리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며 김홍주의 대표 작품으로 거듭난다. ACF를 통해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오랜 시간 쌓아온 작가의 회화 세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전시장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김윤신 작가의 모습. /아트조선
 
“한국에서도 내 작품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번에 한국으로 이주를 결심한 건, 어떻게 보면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지요.”
 
구순이 된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90)은 1959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뒤 196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수학했다. 이후 한국으로 귀국해 여러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으나, 자신 내부의 예술적 열망이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마침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던 조카가 ‘넓게 펼쳐진 이곳의 지평선이 너무도 아름답다’라고 말한 것을 듣고 무작정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났다.
 
김윤신, 기원, 2013, Wood(Palo santo), 52×32×33cm. /갤러리끼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7-5, 1987, Wood(Palo santo), 17.5×27.5×47cm. /갤러리끼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전시를 가졌고,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개관했으며, 수많은 미술적 여정을 이어간 것이 40년이다. 작가는 좋은 공동묘지를 예약해 뒀다며 남은 평생 아르헨티나에서 살게 될 줄 알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가진 개인전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전시를 찾은 수많은 기자와 관람객을 눈으로 확인한 작가는 무척이나 놀랐다고 소감을 남겼다. 그들의 애정이 오롯이 느껴졌기 때문. 거기에 더불어 한국의 여러 갤러리와도 연이 닿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받고, 동시에 한국에서도 전시를 더 이어 나가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4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김윤신의 작품에는 한국에서의 뿌리, 프랑스에서 수학한 경험, 아르헨티나의 자연과 정취를 모두 담은 독자적인 시각 문법이 모두 담겨있다. 작가는 나무 고유의 성정을 존중한 탐구 정신을 반영한 ‘합이합일 분이분일’ 철학에 기반해 나무 그대로의 매력을 살린 목조각 연작과 꾸준히 지속해 온 회화 작업을 선보인다.
 
김윤신은 나무를 좋아한다. 작품에 적합한 나무를 발견하면 생명력을 가진 이 재료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하며 한참이나 들여다본다고 한다. 항상 곁에 두고 생활하며,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마침내, 재료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듯한 순간을 느낀다. 비로소 그때부터 작업에 들어간다. 거침없이 편집하고, 90년 동안 세계를 오가며 경험한 정서와 감각을 오롯이 담아낸다. 때로는 색을 칠하고, 때로는 거침없이 자른다. 열린 마음으로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는 도전정신은 멈추지 않는다. 김윤신은 아직도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최명영 작가 프로필 사진. /The Page Gallery
 
최명영(84)의 화실에는 책상이 많다. 그중에서도 볕이 제일 잘 드는 창가에 자리한 나직한 책상이 아마 그가 가장 자주 마주하는 상이리라. 그 위로 채 완성되지 않은 종이 작업 수 장 옆으로 화구들이 언제든 쓰임을 기다리듯 각자 제자리를 찾아 정갈히 놓여있다. 맞은편 서재에 빼곡히 꽂힌 책들은 무엇이고 하니, 연대별로 분류된 사진 앨범과 기록물, 전람회 화집 등 지난 반 백 년의 그의 족적이 감탄스러우리만큼 말쑥하게 정리돼 있다. 이처럼 작업실 곳곳에서는 작가의 성품이 엿보이는데, 이러한 깔끔하고 정결한 성정이 이끈 것일까. 최명영의 평생화두는 다름 아닌 ‘조건’이었다. 이 창작의 산실(産室)에서 최명영은 회화를 회화로, 평면을 평면으로써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을 완성하는 데 일평생을 몰두했다.
 
마치 산술적 공식처럼 꼭 떨어지는 값이 존재할 것 같이 들리는 이 조건은 2차원 평면의 필요 요건이자, 그 성립 요건을 통해 회화적 리얼리티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물음과 같다. 송곳으로 종이에 천공(穿孔)을 내거나 손가락 끝에 물감을 발라 지문 찍기를 거듭하는 식의 끊임없는 반복은 최명영의 작업 세계를 완성하는 중추적 요소 중 하나다. 화려하거나 과시적이지 않은 이 수행적인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물감과 질료의 정신화를 이뤄내는 것으로, 개성을 제거한 단일 색채와 질감만으로 회화, 즉 평면으로서의 존재 방식을 규명하고자 함이다. 작가는 이를 평면조건이라 명명하고 1970년대 중반부터 오늘날까지 그에 관한 탐구를 지속해 오고 있다.
 
최명영, Conditional Planes 23-61, 2023. /photo by Joel Moritz
최명영, Conditional Planes 22-105A, 2022, Acrylic on paper, 76×56.5cm. /photo by Joel Moritz
 
한편, 최명영은 세계 3대 아트페어로 불리는 ‘2024 테파프 뉴욕(TEFAF New York)’에서 작품이 ‘완판’되기도 했다. 또한 앤디 워홀(Andy Warhol), 장-미쉘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의 작품을 800점 이상 소장한 슈퍼 컬렉터 호세 무그라비(Jose Mugrabi)와 자코메티의 후원가로 알려진 슈퍼 컬렉터 애셔 에델만 (Asher Edelman)이 최명영 작가의 작품을 구매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최명영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이끈 오리진(Origin)과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 (A.G)의 창립 멤버로 활약했으며, 홍익대 미대 교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장을 역임했다. 작가는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이어오며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