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2.27 16:35
‘ACF(Art Chosun Focus)’
국내외 동시대 참여 작가 27인 15회 연재
3월 19일부터 3월 23일까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컬쳐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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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ART CHOSUN, TV CHOSUN 미디어 양사가 공동 주최하고 ACS(아트조선스페이스), 프로젝트더스카이가 공동 기획한 ‘ACF(Art Chosun Focus)’가 3월 19일부터 3월 23일까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컬쳐파크에서 열린다. https://www.artchosunfocus.com/
참여 작가는 27인으로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이 선정돼 행사 기간 중 전시된다. 이에, 본지는 각 작품을 관람하기 전, 미리 알아두면 좋을 작가의 작업관을 요약해 설명한다. 해당 기사는 전시 시작 전까지 15회에 걸쳐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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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모이면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이면 한 페이지를 이룬다. 이들 페이지가 한데 엮이면 한 권의 책이 된다. 인간의 삶도 비슷하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살아가는 과정은 조금씩 달라도 그 인생의 여정을 한 페이지씩 넘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같다. 엄미금(65)의 ‘책’도 그렇다. 작가의 화면 안에는 한 권 한 권 작은 우주와도 같은 책들이 겹겹이 쌓여 우리네 인생의 희로애락을 비추는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자고로 책은 동서고금의 지혜를 담고 있어 지식의 곳간과도 같다고들 한다. 작가는 이러한 특성을 지닌 책에 매료돼 지난 30년간 책을 모티프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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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민화의 맥을 이어온 주요한 작가 중 하나였던 엄미금은 책거리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새로운 조형적 아름다움을 탐구한다. 해체된 책의 형상을 빌려 작가 고유의 인문적 감성을 캔버스에 자유로이 펼쳐 독창적인 추상 형태를 완성해낸 것. 안현정 미술평론가는 이를 ‘인문추상’이라고 직접 명명하고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책을 단순화한 감성을 머금은 색면이 서가에 쌓이듯 하나둘 관계를 형성한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화면을 책으로 옮긴 듯, 캔버스 위로 과감하게 꽂힌 네모난 색면들은 ‘책을 통한 지적체험’을 시적 울림으로 전달한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엄미금은 인문정신의 보고인 책의 본질을 캔버스로 옮김으로써, 과거 책가도에 담긴 선비 정신을 계승하고 오늘날 우리 문화미(文化美)를 발현하며, 동시에 기술의 혁신적인 진보 속에서 인간다움을 실현해 나감으로써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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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금의 작품은 책을 쌓고, 세우고, 겹치고, 펼치고, 또다시 재결합시킨 모습들을 단순하고 절제된 이미지로 표현한다. 화면 속 다채롭고 다양한 색들은 대비를 이루는 동시에 조화를 빚어내며 잘 어우러지는데, 이는 작가의 색에 관한 깊은 탐구를 보여준다. 특정 장르나 사조에 국한되지 않는 엄미금은 우리를 무한한 사유의 세계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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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수(53)는 전통과 현대적 조형미가 어우러진 고유의 달항아리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오랜 인고의 시간이 요구되는 전통 장작가마를 고집하며 20년 넘게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그의 달항아리가 뿜어내는 설백색은 보는 이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준다.
“달은 언제 보아도 좋은 친구를 보는 것처럼 푸근한 마음을 느끼게 합니다. 추운 겨울밤 어두운 길을 비추는 것도 달이 있으면 외롭지 않게 걸어갈 수 있는 것처럼 푸근한 것이 달입니다. 이런 푸근한 마음을 지닌 백자 달항아리는 우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게 그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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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이는 백색이 아닌, 차분하고 은은한 온백색으로도 보이는 달항아리는 소나무 장작으로만 때 굽는 전통가마에서 태어난다. 옛 달항아리에서 나타나는 그 색감을 낼 수 있어 과정은 지난하지만 작품 제작 과정에서의 타협은 없다. 하나의 달항아리임에도 보는 각도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달라 보이기도, 색이 달리 느껴지기도 해, 흡사 열 개의 다른 달항아리로 다가오는 듯하다.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멋과 아름다움이 침윤한다.
강민수의 달항아리는 비움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교본이다. 둥그렇고 넉넉한 품, 무채색의 포근함, 소박하지만 숭고한 절제미, 불균형하지만 자연스러운 선. 달항아리는 모든 것을 담고 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움을 지향함으로써 달항아리다울 수 있다. 이는 곧 채워야만 완전해진다는 현대인의 강박과 정반대의 노선을 택하는 것으로, 덜어냄을 통해 본연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일이다.
강민수는 극소수의 완성품만 남기고 모두 폐기할 정도로 작품에 대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 약 20년여 년간 달항아리에만 매진해 온 작품에서는 장인정신이 느껴질 정도다. ACF에서는 담박하고 절제미 넘치는 강민수만의 달항아리를 감상할 수 있다. 문의: (02)736-7833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