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2.19 11:14
●전시명: '나는 피안으로 간다'
●기간: 2025. 2. 28 ─ 4. 11
●장소: 갤러리JJ(압구정로30길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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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시간 앞에서 짧은 인생은 무에 지나지 않는다. ‘···머뭇머뭇하는 사이에··· 몇 가지 지속적인 것이 있다는.’ 프리드리히 휠덜린의 시구절은 우리가 보내는 시간에 관하여 시사점을 던진다. 갤러리JJ는 2025년 새해 첫 전시로 회화 작가 유현경의 전시를 개최한다.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유현경(Hyeonkyeong You)은 ‘그리기’, 곧 회화적 속성에 충실한 작가로, 주로 일상의 사람과 집, 풍경 등을 매개로 자신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추상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그림으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 ≪유현경: 나는 피안으로 간다≫는 풍경을 소재로 하며, 그간 그의 작업을 종종 대변해왔던 인물 작업보다 장소에 대한 정취나 기억과 함께 태곳적 시간을 품은 대자연의 풍광을 통해 보다 확장된 세계를 보여준다. 베를린의 자연과 최근 약 2개월 간 중국의 신장 지역을 여행하면서 광활한 자연환경을 체험한 내용을 그린 신작 풍경 회화 <Wilderness> 시리즈를 중심으로 자화상을 비롯한 15점의 유화 작품으로 구성된다.
전시장의 화면 속 망망한 대지, 화면을 가로 지르는 지평선은 마치 프레임 바깥으로 내달리듯 공간을 연장한다. 그것은 넓은 여백, 몇 안 되는 서너 가지의 색, 붓질과 안료 질감의 미세한 차이 만으로도 척박한 광야 어딘가를 소환한다. 화면은 평론가 정영목이 말했듯이(2020년), 시원하고 간결한 붓질의 추상성이 그림으로 만들어 하나의 조합으로 읽힌다. 여백을 포함하여 전체와 부분이 서로 침투하고 진동하며 유기적으로 얽힌 듯 표현된 화면은 상념을 불러일으키며 오랫동안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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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경의 예술세계는 세계와 나를 관계 맺는 또 하나의 태도를 제시한다. 작업은 작가 자신으로 환원된다. 대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다루는 작가는 보이는 대상을 이미지로 차용하기보다 실질적으로 대상에 다가가고 접촉하여 내밀한 변화를 포착한다. 그것은 형태를 구축하기보다 해체하며, 단순한 시선을 넘어서 구체성을 생략해버린 채 표현적이면서 추상적인 화면으로 나타난다. 작업은 솔직하고 거침없으며 견고한 구성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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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표정 없는 초기 인물화를 비롯한 거침없이 빠른 붓놀림과 최소한의 형태를 가진 인물화로 그 독창성이 가장 먼저 알려졌고, 그것은 작업에서 꾸준히 많은 비중을 차지해왔다. 대학을 막 졸업하던 작가 초기인 2009년 전시 ≪화가와 모델≫(서울대학교 우석홀)부터 OCI미술관(2011년), 학고재갤러리(2012년)로 이어지면서, <일반인 남성모델>연작을 시작으로 누드화를 포함하여 주변의 평범한 사람을 그린 인물화는 단번에 화단의 비평적 주목을 끌면서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인물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작업은 집과 자신이 지나다니는 길 같은 장소의 정취에 관한 기억으로 확장된다. 뉴욕의 두산갤러리(2016년), 스페이스몸미술관(2018년) 전시를 비롯하여, 2020년에 베를린으로 이주 후 최근까지 여주미술관(2024년) 전시에서 거대한 스케일의 추상회화와 텍스트를 사용한 회화를 선보이는 등 활발한 전시 행보와 진전된 작업을 보인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이러한 베를린에서의 자유로운 느낌을 자신이 지향하는 삶에의 의지로 좀더 심화하여 드러내며, 이는 곧 자신이 체험한 척박한 땅, 인적 드문 황무지로 투사된다. 전시의 중심이 되는 <Wilderness> 시리즈는 단순한 풍광이기보다 시간으로 달리는 광야와 대지, 시간과 결합한 풍경이다. 문명이 닿지 않은 원초적 풍광은 시간을 느끼게 한다. 문자 그대로 ‘저쪽 언덕’이란 뜻의 피안은 각자 다르겠지만 우리가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는 언젠가 도달해야 할 미래의 장소일지 모른다. 작가에게 그것은 자신이 처한 현실의 제도와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깊이를 가지는 시간과 공간이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