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준의 캔버스 안에서 즐겁게 길 잃기

  • 김현 기자

입력 : 2025.02.07 17:12

레이어 쌓아 회화적 여정 제시한다
이영준 개인전 ‘오렌지 컨테이너’
3월 15일까지 삼청동 피비갤러리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이영준 작가. /아트조선
Schwuppdiwupp, 2024, Ink, oil, car spray and acrylic on canvas, 200X200cm. /피비갤러리
 
캔버스 위에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시선을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또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 유리창에 낀 성애를 손가락으로 지워낸 것과 닮은 형상이 있다. 전단지를 지저분하게 떼낸 듯한 흔적이 있다. 우중충한 날씨 아래 소외된 콘크리트 벽면에 그려져 있을 법한 그래피티가 있다. 디지털 세계가 연상되는 그리드가 있다. 선택은 관람객의 몫이다. 저마다 직관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회화적 요소에서부터 여정을 출발해, 다시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 상하좌우는 물론이고 캔버스 안팎으로 오갈 수도 있다. 작가 이영준은 시선과 감각을 교차하며 캔버스 안에 레이어를 쌓는다. 이영준의 화면은 일종의 공간이다.
 
작품이 3차원 공간이라면, 작품이 모여 상호작용하는 전시장은 4차원 공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영준은 이를 ‘오렌지 컨테이너’라고 정의했다. 작가가 선호하는 감각적인 색인 오렌지와 ‘담다, 포함하다’라는 의미의 컨테인에서 연상된 것이다. 이영준 개인전 ‘오렌지 컨테이너’는 3월 15일까지 삼청동 피비갤러리에서 열린다.
 
Notation outgoing invasion #5, 2024, charcoal and acrlyic on canvas, 220X220cm. /피비갤러리
7 Layers_ elements, 2024, watercolor, oil, acrlyic and screen printing on canvas, 80X80cm. /피비갤러리
 
이영준은 이번 전시에서 회화적 공간을 경계 짓고 허물며 운동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소개한다. 작가의 작업은 리드미컬한 핸드 프리 드로잉과 스텐실 패턴 드로잉을 통해 화면 안에서 즉흥성과 반복성을 띤다. 이는 마치 평면성이나 시대적 관습처럼 회화 매체에 따라붙어 온 규범을 해체하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수직수평의 그리드, 색면 추상을 떠올리도록 하는 레이어를 또 다른 겹으로 배치하며 회화에 대한 깊이를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영준의 레이어는 시간성을 가진다. 화면 위에 겹쳐져 있지만 일종의 순서와 질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관람객은 레이어의 중첩 속에서 작업과정을 추적해 볼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 출품작은 모두 정방형이다. 이는 작업 중 사방으로 이뤄지는 자유로운 방향전환을 통한 화면 내 균형 탐구와 더욱 밀접히 관계를 맺는다. 이는 대칭과 긴장, 어긋남 속에서 균형을 맞춰 나가는 과정, 그 안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드러내거나 숨기는 행위 자체를 본질로 삼는 작가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오렌지 컨테이너’전시 전경. /아트조선
‘오렌지 컨테이너’ 전시 전경. /아트조선
 
이영준은 독일 Galerie Sebastianskapelle Ulm e.V.를 시작으로 한국의 스페이스 카다로그, 지우헌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네덜란드 IDFX, 독일의 Kunstraum-Leitershofen, Galerie der Kunstler, 한국의 프람프트 프로젝트 등에서 그룹전에 참여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는 결합과 파괴를 반복하며 공간을 평면으로 압축해 보는 듯 다양한 형상과 색채의 조화로 이뤄진 복합적 풍경을 형성하고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