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12.19 14:15
●전시명: '종만리'
●기간: 2024. 12. 13 ─ 2025. 1. 25
●장소: P21(회나무로 66)


P21은 2024년 12월 13일부터 2025년 1월 25일까지 이현수의 개인전 종만리(Jong Man Ri)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를 주제로 한 기존의 ‘빠빠쓰뗄(Papastel)’ 시리즈의 파스텔 드로잉과 함께 새로운 시리즈 ‘노안(Farsighted)’과 ‘머릿돌(Headstone)’을 선보인다. 2022년부터 아버지의 변화를 그려온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로운 시리즈를 확장해 가며 각 시리즈 들은 아버지와의 관계의 변화와 쇠퇴에 대한 작가의 감정을 담고 있다.
이 전시는 아버지 이종만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탐구의 과정을 보여주며, 부자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아버지의 노화를 통해 그들의 복잡한 감정을 다룬다. 이번 전시의 신작들은 작가가 아버지의 노화에 대한 관찰을 이어가며 취약성, 기억, 시간의 흐름을 중심으로 유머, 색감, 그리고 개인적인 반성을 통해 노화의 불가피함을 다룬다. 전시 제목인 종만리(Jong Man Ri)는 아버지 이종만의 이름을 차용한 말장난으로, 영문 제목에서 ‘리’를 아버지의 성인 ‘Lee’로 표기하지 않고 한국의 지명에서 사용하는 ‘ri’로 표기한다. 이는 외딴 마을을 떠올리게 하며 아버지의 사회로부터의 단절과 노년의 쇠퇴하는 삶을 상징한다. 아버지의 이름을 전시 제목으로 한번 더 비틀어 사용함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궁금증과 실소를 유발하여 그저 심각하지만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작가의 주된 작업이라고 볼 수 있는 ‘빠빠쓰뗄(Papastel)’ 시리즈는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아빠와 파스텔의 합성어인 이 제목은 전시 제목을 포함하여 늘 등장하는 이현수만의 언어 유희이며, 이는 절망적이고 우울한 상황에서 웃음을 찾아 저항하는 그의 그리기와 말하기 방식이다. 작가는 소프트파스텔을 사용함으로써 부드럽고 불확실한 테두리를 통해 점점 사라지는 아버지의 존재감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손끝으로 아버지라는 대상을 문지르며 실재하는 대상이지만 작가의 과거이자 미래를 같이 바라본다.
이번 전시에서 새로 시작되는 ‘노안(Farsighted)’시리즈는 아버지의 얼굴을 넘어 거동이 불편해진 그가 바라보는 공간들, 예를 들어 거실과 정원을 담으며 그의 공허한 시선이 향하는 대상을 포착한다. 여기서 작가는 아버지가 이 공간에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버지가 고요히 바라보는 익숙하지만 먼 풍경을 통해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작가는 이 시리즈를 그릴 때는 안경을 벗고 작업하여 노안이 온 아버지의 흐리고 멍한 시선을 최대한으로 공감하며 보는 이에게도 시선의 끝을 같이 바라보는 느낌을 전달한다. 그에게 그리기라는 지속적인 행위는 과거와 미래 사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불확실한 미래 사이를 탐색하는 방법이 된다.


또한 ‘머릿돌(Headstone)’ 시리즈는 아버지의 두상을 파스텔을 사용하여 캐스팅 한 작품으로, 이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로 파스텔 덩어리로 뜨여진 아버지의 얼굴을 다듬고 문지르며 아이가 세상을 알아가기 위해 손에 집히는 모든 것들을 입에도 넣어보고 방안에 문지르듯, 파스텔을 평면 종이에 문지르는 기법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얼굴을 3차원적으로 부드럽게 만지는 과정을 다룬다. 이 시리즈는 ‘빠빠쓰뗄(Papastel)’에서 파스텔이 분말로 바뀌는 기법과는 달리 아버지의 두상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여 드로잉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는 파스텔을 조각의 재료로 이용하며 매체와 주제 사이의 순환적 관계를 강조하며, 조각의 형태와 드로잉 행위가 결합되어 존재와 부재의 긴장을 탐구하고 지나가는 순간과 다가올 것의 관계를 포착한다. 이러한 변화는 두 시리즈 간의 은유적인 연결 고리가 되며, 아버지의 쇠퇴하는 존재를 촉각적이고 조각적인 매체를 통해 탐구하는 과정을 이어간다.
종만리(Jong Man Ri)의 중심에는 부자간의 관계에 대한 반성이 있다. 이 관계는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울림을 가진다. 이현수의 작업은 아버지를 기존의 강하고 권위적인 인물로 묘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아버지가 불가피한 노화와 마주하며 겪는 취약함과 연약함을 그린다. 이런 작가만의 표현 방식은 아버지에 대한 기존의 시각과 대비하며 현대 사회에서 아버지의 변화하는 역할에 대한 숙고를 불러일으킨다. 이를 통해 이현수는 사랑, 원망, 기억의 복합적인 감정을 다루며 그가 애용하는 유머와 놀이적 요소는 작품에서 보여지는 애잔함과 대조를 이루며 가족관계와 기억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낸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