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려퍼지는 심장 소리… 전광영 국내 6년만 개인전

  • 김현 기자

입력 : 2024.12.13 16:16

어린 시절 본 한약방 풍경과 한국의 보자기 문화 담아
한지로 조각 감싸는 행위에 깃든 한국적인 정서
대형 설치 작품 포함한 20여 점 출품
‘Aggregations: Resonance, In-between’
2월 2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Aggregation24-JL070, 2024,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62x135cm. /가나아트센터
Aggregation001-MY057, 2001,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10x300cm (6ea). /가나아트센터
 
삼각형 스티로폼이 모이면 세계의 축소판이 된다. 작가 전광영(80)은 수천 개의 삼각형 스티로폼을 논어, 맹자, 법전이나 소설 등의 내용이 담긴 한지로 감싼 뒤, 퍼즐처럼 이어붙여 하나의 형상을 만든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때로는 평면적으로 미적 경험을 선사하고, 때로는 알 수 없는 입체적 형상으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전광영은 1970년대 미국 필라델피아 유학 시절, 한 때 추상표현주의에 심취해 있던 작가는 자신의 경쟁력을 한국 고유의 정신과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1982년 귀국했다. 작가는 곳곳의 미술관, 박물관, 민속촌 등을 다니며 영감을 얻고자 노력했다. 그러던 중 불현듯 떠올린 것은 어린 시절 큰아버지의 한약방에서 보았던 풍경과 물건을 보자기로 감싸는 우리의 문화였다. 두 소재 모두 전광영에게 한국의 정(情)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한약방 천장에 빼곡히 달린 약재 봉투는 전광영의 화면에서 삼각형의 구성 요소로 새롭게 태어났고, 이를 하나하나 한지로 감싸는 작업 방식은 보자기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삼각형 스티로폼을 엮어 인류의 역사 속 이데올로기의 대립, 계층 간의 갈등을 담는 전광영의 개인전 ‘Aggregations: Resonance, In-between’이 2월 2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한국에서 6년 만에 가지는 개인전으로, 1980년대 ‘빛’ 시리즈를 비롯한 대형 설치작업과 ‘치유’ 시리즈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집합’ 연작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인다.
 
작품 클로즈업. /아트조선
‘Aggregations: Resonance, In-between’ 전시 전경. /아트조선
‘Aggregations: Resonance, In-between’ 전시 전경. /아트조선
 
특히 이번 전시는 1980년대 초기작부터 2024년 최신작까지 20점을 소개하며, 가로 11m, 세로 4m 벽에 펼쳐진 영상 작업 ‘Eternity of Existence’,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이는 설치 작업 ‘Aggregation001-MY057’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병든 심장 모양의 대형 설치 작품 ‘Aggregation15-JL038’은 거대한 크기와 전시장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이 소리는 죽어가는 사람의 심장소리를 표현한 것으로, 작가는 이를 통해 불안한 감정을 느끼도록 의도했다고 밝혔다. 어두운 전시장의 조명과 작품이 어우러져 더욱 신비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삼각형 스티로폼을 감싼 종이 위 텍스트들이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Aggregations: Resonance, In-between’ 전시 전경. /아트조선
 
한편 전광영은 한국인 최초로 뉴욕 브루클린 뮤지엄과 모스크바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제 59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로 선정된 그의 ‘재창조된 시간들(Times Reimaged)’은 총 10만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으며, 영국 박물관(British Museum), 홍콩 M+, 호주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 중국의 하우 아트 뮤지엄(How Art Museum) 등 세계적인 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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