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11.01 14:35
2025년 4월 13일까지 개인전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
전시장 중앙 공간에 등장한 선술집
회화, 조각, 사진, 영상, 설치, 이벤트 등 장르 넘나드는 100여 점


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성희) 중앙 공간 ‘서울박스’에 선술집이 나타났다. 개념미술가 이강소의 설치 작품 ‘소멸’이다. 이는 작가의 참여를 최소화하며 전시장에 마련된 의자와 탁자에 직접 앉는 경험을 하고, 작가 대신 관람객 스스로가 작품을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철학을 드러낸다.



이강소는 2025년 4월 13일까지 전시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3,4전시실에서 가진다. 전시명 ‘풍래수면시’는 바람이 물을 스치는 순간을 의미하며 새로운 세계와 마주치며 깨달음을 얻은 의식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송나라 성리학자 소옹(邵雍, 1011~1077년)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회화, 조각, 설치, 판화,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세계에 대한 서로 다른 인지 방식을 질문하고 지각에 관한 개념적인 실험을 지속해 온 작가의 예술세계를 함축한다. 이번 전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개념적 실험작업을 시도한 이강소의 작품 세계 전반을 조명한다.
이강소는 학창시절 아버지가 사준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미술의 매력을 체감했다. 또한 고등학교 때부터 동료를 모아 전시를 만들어 작품을 발표하고, 현대미술 정보교류를 위한 스터디 모임을 구성하며 미술계에 입문했다. 1970년 신체제 그룹을 결성하여 미술계에 두각을 드러냈고, 1973년 공식적인 첫 개인전을 가졌다. 이후 1979년까지 대구현대미술제를 기획, 동료 작가들과 함께 서구의 미술사와 다른 한국현대미술 고유의 철학적, 미술적 태도를 찾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비디오, 판화, 영상 등으로 기존의 이미지에 대한 이해를 전복할 수 있는 매체 실험을 함께 진행했다. 이는 매체를 넘나들며 개념과 예술적 에너지를 전달하는 지금의 성향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번 전시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에서도 다양한 매체로 제작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후 이강소는 제9회 파리비엔날레(1975), 제2회 시드니비엔날레(1976), 제10회 도쿄국제판화비엔날레(1976), 제14회 상파울루비엔날레(1977) 등에 참여하며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1980년대 이후에는 사유의 과정에 천착하며 회화작업에 몰두하였는데 끊임없이 변하는 대상의 속성과 이미지를 바라보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상황을 인식하여, 창작자의 의도를 최대한 배제한 그리기 실험을 지속해 왔다. 작가는 1980년대 초 추상에서 시작하여 1980년대 후반 집, 배, 오리, 사슴의 등의 구상을 거쳐, 1990년대 이후 추상과 구상을 오가며 상상적 실재를 이야기하였고, 이는 2000년대 이후 글자와 추상의 경계를 교묘하게 이용한 작업 시리즈로 지속됐다.
이강소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작가의 의도는 덜어내고 미술관의 학예연구사의 연구로 전시가 구성되면 좋겠다. 그들이 하는 결과물을 보고 나도 많이 배웠다”라고 이번 전시에 대해 밝힌 바 있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작가가 꾸준히 탐구해 온 두 가지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첫 번째는 ‘창작자이자 세상을 만나는 주체로서 작가 자신의 인식에 대한 회의’, 두 번째는 ‘작가와 관람객이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의문’. 이러한 질문을 관람객에게 던지기 위해 가로 10미터 대형회화, 조각, 비디오, 이벤트 등 장르를 넘나드는 10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된다.


전시 공간은 제3전시실과 제4전시실로 나뉘며, 제3전시실에서는 1970년대 이후 작가의 역할과 한계를 질문하는 작품부터, 1975년 파리비엔날레에서 새로운 매체를 접한 후 지속된 작품을 소개한다. 비디오 작업 ‘페인팅 78-1’(1978)과 누드 퍼포먼스 ‘페인팅 (이벤트 77-2)’(1977)는 각각 그리는 행위를 통해 오히려 작가 본인이 지워지거나, 작가의 몸에 묻은 물감을 지워내는 과정에서 회화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비디오 작업 ‘페인팅 78-1’(1978)과 연계하여 작가가 1977년 리화랑 옥상에서 유리에 칠을 하며 실험하였던 사진 작업이 처음 발굴되어 함께 출품된다. 이러한 ‘작가 지우기’의 노력은 실험미술 시기를 거친 후 지각하는 대상의 존재를 의심하며 표현하는 추상과 구상회화의 단계로 나아간다.
제4전시실에서는 초기 작업부터 2000년대 회화에 이르기까지 바라보는 대상을 의심하며 이미지와 실재의 관계를 고민한 작업 세계를 살펴본다. 1960년대 후반, 서구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위미술을 시도하고자 하는 흐름이 한국 미술계에 등장할 때 강소는 변화에 대한 욕망, 현실에 대한 허무감, 세계를 보는 비판적 시각 등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도전했다. 작가의 초기작 ‘무제-7522’(1975/2018 재제작), ‘무제-76200’(1976), 특히 초기 주요 설치작 ‘근대 미술에 대하여 결별을 고함’(1971/2024 재제작) 등을 재제작해 최초 공개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과거이자 현재인 작업 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많은 국내외 관람객들이 작가가 평생 추구한 개념들을 시대와 매체, 표현에 따라 느껴보며 한국현대미술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