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으로 상속세 대신 낸다… ‘물납제’ 국내 첫 신청

  • 김현 기자

입력 : 2024.10.08 16:34

법 개정 이후 국내 첫 사례
이만익, 전광영, 쩡판즈 작품 4점 허가

파리 피카소미술관은 피카소가 사망하고 유족이 상속세를 그의 작품 200여 점으로 물납하며 건립됐다. ⓒMusée national Picasso-Paris, Béatrice Hatala, Konstantin Lucas Mikaberidze
 
물납제는 상속세 납부 시 현금 대신 문화유산이나 미술품 등 특정 자산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제도다. 2023년 1월 2일,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으로 문화유산 등에 대한 물납제가 도입된 뒤, 8일 오후 국내 최초 물납 미술품 4점이 신청됐다.
 
쩡판즈, Portrait, 2007, 린넨에 유채, 220.0×145.0cm. /문화체육관광부
전광영, Aggregation 08-JU072 BLUE, 2008, 닥종이에 혼합재료, 214.0×404.0cm. /문화체육관광부
이만익, 일출도, 1991, 캔버스에 유채, 333.0×172.0cm . /문화체육관광부
 
대상 작품은 원경의 바다 위로 태양이 떠오르는 극적인 순간을 표현한 이만익의 ‘일출도’(1991), 한자로 쓰인 한지로 감싼 삼각형의 ‘유닛’을 기본단위로 한 전광영의 ‘집합(Aggregation)08-제이유(JU)072블루(BLUE)’(2008), 현대사회와 인간소외를 주제로 작품을 왕성하게 제작한 쩡판즈(Zeng Fanzhi)의 ‘초상화(Portrait)’(2007) 2점까지 총 4점이 물납 허가를 받았다.
 
물납제의 목적은 중요한 문화유산이나 미술품을 국가의 자산으로 삼아 보존하고 확보한 문화유산과 미술품을 국민에게 공개해 문화향유 기회를 증진하는데 있다. 또한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2021년도에 기고한 본지 칼럼에서 “중요한 것은 인류의 국민의 문화재 미술품이 어느 한 개인이나 가문의 비장품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공유하고 향수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것으로 세상에 나올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즉 쉽게 사장되거나 묻힐 수 있는 문화재 미술품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발굴’의 의미가 물납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 또한 뒤따른다. 미술품은 부동산이나 금과 같이 시세가 공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가격의 변동 가능성이나 투명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가품의 위험성도 존재한다. 국가가 개인에게 작품을 수령하면서 배경에 대한 전문적인 검증 절차는 물론 진위여부까지 따져봐야 한다.
 
로스차일드가가 1983년 상속세로 물납한 얀 베르메르의 <천문학자(The Astronomer)>(1968)는 현재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Musée du Louvre
 
물납 절차는 다음과 같다. 물납을 신청하려는 납세자는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에게 물납 신청을 해야 한다. 물납 신청을 받은 관할 세무서는 신청 내역을 문체부 장관에게 통보하고, 문체부 장관은 물납심의위원회를 구성해 물납의 적정성과 필요성을 심의한다. 문체부 장관은 심의 결과를 관계부처 협의회에서 의결하고, 관할 세무서장에게 물납을 요청한다. 이후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은 국고 손실의 위험이 크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물납을 허가한다. 신청 작품은 조사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등록될 예정이며 향후 다양한 전시와 행사에서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강대금 지역문화정책관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첫 물납 미술품을 받게 되어 고무적이다. 이는 전문가들과 관계부처 정책 담당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이뤄낸 결과다”라며 “미술품 물납제도가 첫발을 내디딘 만큼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문체부는 제도 시행에서 발견한 미비점을 보완하고 제도를 활성화하는데 적극 노력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미술품이 국가 소유가 되면서 장기적으로 국민들이 보다 풍요롭게 문화 예술을 향유할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밝혔고, 정가품 여부에 대해서는 “공인된 외부 기관에 서류를 요청해 작품을 심층적으로 감정하고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로 이뤄진 심의위원회를 거쳐 선정한다”라고 밝혔다.
 
※[Specialist] 미술품 물납제와 가치감정 칼럼 보기
https://art.chosun.com/site/data/html_dir/2021/12/03/20211203018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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