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10.02 16:47
그간 선보인 작업 총망라
10월 27일까지 종로구 팔판동 WW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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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경의 조각 작품은 오래 전 과거에서 발굴한 듯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다. 몇 백, 몇 천년이 흘러 자연스럽게 풍화된 것처럼 인물 조각상은 이목구비가 흐릿해져 있고, 평면 작품은 금가고 갈라진 형상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는 비누로 만들어진 것. 비누는 약하고 무르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집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신미경의 개인전 ‘Chronicles of Collapse’이 10월 27일까지 종로구 팔판동 WWNN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작업을 통해 생성과 소멸, 재생이라는 순환적 주제를 다룬다. 작가의 작품은 서양의 고전 조각, 동양의 도자기, 그리고 뮤지올로지의 유산이 연상된다. 그간 동서양의 문화적 오브제를 비누로 탐색해 온 신미경은 물질적이고 관념적인 조건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연구돼 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에서 거의 선보이지 않았던 세라믹 작품을 선보이며, 일반적으로 마주하는 결과물로서의 작품보다 그 이면에 숨겨진 작가의 태도에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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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순환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신미경의 시간적 연대기를 추적한다. 2014년부터 발표된 ‘페인팅 시리즈’부터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트랜스레이션’, 비누조각을 브론즈로 캐스팅 한 ‘풍화 프로젝트’, 네덜란드 레지던시에 머물며 우연히 발견한 파편에서 시작된 ‘거석 시리즈’ 등 신미경의 오랜 작업을 총망라 해 일대기적으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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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 제목은 ‘붕괴의 연대기’로도 풀이될 수 있다. 이는 신미경의 조각이 담고 있는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복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풍화되고 마모되는 것들, 순환적이며 동시에 우리의 손을 떠난 산물들. 문화적이면서도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생성과 소멸, 그리고 재생의 기록을 떠올린다. 붕괴된 시간을 켜켜이 쌓은 이번 전시에서도 신미경의 작품은 여전히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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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미경은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런던 슬레이드 미술대학과 영국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을 비롯해 미국 휴스톤미술관, 영국 브리티쉬아트카운슬 등 세계적인 유수의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는 등 국제적인 명성을 획득한 작가다. 최근에는 코리아나미술관과 ACS(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이외에도 네덜란드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 런던 바라캇갤러리, 우양미술관, 아르코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