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8.23 16:51
●전시명: '표류하는 파편들의 도시'
●기간: 2024. 8. 28 ─ 9. 3
●장소: 갤러리도스(삼청로7길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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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전하며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의 다양성과 편리함은 더욱 급증하고 있다. 우리가 현재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의 대부분은 공간의 모든 환경과 조건을 인간 위주로 설계하여 제작한 장소일 것이다. 시대의 운을 타고난 현대인은 필요에 따라 목적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을 먼 거리로 이동하지 않고도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현실에서 주어진 요소에 늘 만족하지 못하며 또 다른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어딘가의 장소를 부단히 바란다. 멈출 줄 모르는 끝없는 욕구는 우리로 하여금 결국 원하던 모든 것이 갖추어진 가상의 공간에 의존하도록 만들었고 사람들은 상상으로 그려오던 세계를 현실화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잔뜩 고양되어 공간이 지니는 진정한 양질의 가치를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채림 작가는 우리를 둘러싼 실제 환경에서 좋은 공간이라는 것의 정의와 본질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인간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과연 이와 부합하는 적절한 지표인지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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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은 작가가 공간 디자이너 시절 장소를 제작하고 설계하면서 해당 공간에서 겪은 특정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전문가로서 여러 곳을 마주하며 체감해 왔던 직접적인 정보들이 축적되자 작가는 오랜 시간 인내하기 버거워하는 인류의 편의에 따라 신속한 속도를 좇아 탄생한 공간과 쾌적하고 넓지만 마찬가지로 인간만을 고려하여 생산되는 온갖 인공 장치와 시설들을 창출해 내는 결과가 과연 ‘좋은 공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여기저기서 시선을 끌게 만드는 효과나 과장되는 면적 또는 각도, 그 밖의 모니터 내부에서 화려하게 존재하는 여러 시각적 조건은 정신을 현혹시키며 소비 욕구를 유발한다. 작가는 이러한 소비자의 주관으로부터 독립하여 공간의 현실성을 객관적으로 의식하며 그럴듯하게 완성된 곳의 마지막 이미지에 중점을 두는 것 대신 한 장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형성되고 사라지며 변모하는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조명한다. 도면 속 2차원의 형태를 3차원으로 구성하기 위해 쓰이는 각종 자재와 장비들은 작가의 시선에서 거듭 포개지며 새로운 구조의 복합 양상을 띤 예술로 탄생한다. 작품은 드로잉, 디지털 에스키스, 회화라는 결정적인 3가지 단계를 거치며 디지털 기술이 뒷받침된 속성 작업이 가능한 매체와 장시간을 관리하며 밀도를 쌓아나가는 수작업을 병행한 뒤 비로소 완성된다. 길게 머물지 못하고 급하게 사라진 뒤 짧은 시간 동안 다시 생성하기를 반복하는 세간에서 작가는 작품이 내포하는 의미를 작업 과정에서도 포괄적으로 다루며 사회가 규정한 틀에 갇혀 있기보다는 자신만의 속도와 가치관을 지키고 고유의 경험을 확립하고자 한다.
누구나 때로는 지금에 안주하지 못하고 내적 욕망에 사로잡혀 비현실적인 가상현실에 의지하는 순간이 있다. 없는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도시는 흠 잡을 데 없는 풍경과 근사한 환경을 설비한 듯 보이지만 우리는 혹여 사회가 만들어낸 물질적 허상에 홀린 듯 몸을 싣고 본질의 가치를 헤아리지 못한 채 허울뿐인 이상을 뒤따르는 것은 아닐지 마음 속 깊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채림 작가는 좋은 공간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모색하고자 예술의 영역에서 끊임없는 시도로 다양한 매체와 수단을 아우르며 감상자가 작품을 통해 본인이 진정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세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작가가 사색한 공간과 경험이 오롯이 드러나는 이번 전시에서 잠시나마 과도한 욕심에서 벗어나 같은 사회를 공유하는 우리가 공간이 가져다주는 원초적 메시지에 서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보기를 바란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