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뒷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 김현 기자

입력 : 2024.07.01 17:44

회화, 조각, 소리를 설치에 결합하는 작업
스위스 브베 기반 작가
라티파 에샤크 개인전 ‘Les Albatros’
8월 17일까지 한남동 페이스갤러리

‘Les Albatros’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
전시장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라티파 에샤크 작가의 모습(오른쪽). /아트조선
 
작품은 모두 벽과 맞닿게 걸려있다. 캔버스를 길게 늘어트려 벽과 맞닿은 면의 작품을 일부 감상할 수 있지만, 관람객에게는 캔버스의 뒷면, 즉 검은 화면이 더 지배적으로 보인다. 또한 전시 공간은 암막커튼을 둘러 어둡게 연출했다. 자신의 뒷면을 노출한 작품에 둘러싸여 감상하다 보면 관람객은 마치 게임 속 세상의 뒷면에 들어온 듯한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라티파 에샤크(Latifa Echakhch·50)의 개인전 ‘Les Albatros’가 8월 17일까지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는 에샤크의 두 번째 전시이자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다. 1층 전시 공간에서 다섯 점의 회화를 선보인다. 에샤크는 오늘날 풍경을 그리는 행위에 대해 탐구하며 관람객은 직물을 늘어트린 형태로 놓인 캔버스의 뒷면을 보게 된다. 이러한 설치 방식은 주변 환경과 작품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설치돼 내부와 외부, 자연과 인공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Les Albatros’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
‘Les Albatros’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
 
회화, 조각, 소리를 장소 특정적 설치에 결합하는 작업으로 알려진 에샤크는 해당 매체와 관계된 대표적인 상징물과 구조를 뜯어보는 방식으로 권력과 사회정치적 현실이라는 쟁점을 고찰한다. 특히 그는 미술사 안에서 복잡다난한 의미를 담아온 ‘풍경’이라는 모티프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전시 제목은 현대 예술가의 고독을 주제로 한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시 속 알바트로스는 아름다움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선원에게 학대와 조롱을 받는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 이 시를 상징적으로 연결해 하늘에서 갑판 위로 끌려온 알바트로스에 비유해 본다.
 
L'Albatros, 2024, acrylic on canvas, Dimensions variable. /페이스갤러리
‘Les Albatros’ 전시 전경. /아트조선
 
에샤크는 자신이 그렸던 나무를 거의 완전히 가리는 장치를 통해 관객이 풍경화에서 기대하는 바를 배반한다. 관객은 익숙한 풍경 대신 불규칙하게 덧칠해진 검은 표면을 직면한다. 이는 에샤크가 캔버스 위에 구축한 예술적 노동을 해체하는 식으로 나무를 그렸으며, 나무에 대한 심리학적 해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심리학적 해석은 대부분 전작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의미와 참조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집단적인 영역으로 전환된다. 이번 전시의 연출은 비정치적이고 순수하게 사색적인 풍경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의문을 기반으로 한다.
 
한편, 라티파 에샤크는 스위스의 브베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편견, 모순과 고정관념에 대한 질문을 바탕으로 그러한 현상이 상징하는 바를 탐구한다. 2007년 열린 첫 개인전 이후 취리히의 쿤스트하우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 몬테카를로의 신국립미술관 등 다양한 곳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외에도 이스탄불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샤르자 비엔날레, 예루살렘 아트 포커스 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또한 2022년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스위스 대표로 참가한 바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