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놀이터, 이슬기 개인전 ‘삼삼’

  • 김현 기자

입력 : 2024.06.28 16:40

가볍고 위트 있는 인류학적 시선
해외 곳곳에서 경험하며 작품세계 다져
8월 4일까지 갤러리현대 신관

쿤다리 거미 II, 2021, 스테인리스 스틸에 우레탄 도장, 18 x200x100cm. /갤러리현대
U_부아가 나다, 2024, 진주명주, 통영 누비장인과의 협업, 195x155x1cm. /갤러리현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슬기 작가의 모습. /아트조선
 
공간 전체가 하나의 놀이터다. 전시장 1층과 지하 1층을 잇는 계단 옆 공간에는 거대한 격자무늬 그물망처럼 생긴 작품 ‘느린 물’이 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변화하는 시점의 높이에 맞게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마치 정글짐을 타고 노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유는 작가 이슬기(52)가 나무 문살의 한쪽 면에만 채색을 했기 때문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나무 문살 사이로 숨기도 한다. 한국 전통 문살 제작 방식과 단청 칠 기법을 적용해 제작한 것으로 이번 전시 ’삼삼’에서는 디스크 형태로 편집된 일부분이 설치돼 있다.
 
느린 물, 2021, 나무 문살에 단청 채색, 지름 1100cm. /갤러리현대
바가텔 1, 2020, 참나무, 못, 구슬, 120x60x6cm. /갤러리현대
 
지하 1층으로 완전히 내려오면 전시장 벽면에 격자무늬의 ‘모시 단청’이 그려져 있다. 평면에 회화적으로 그려진 ‘모시 단청’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나무 조형이 주는 입체감을 감각하게 했던 ‘느린 물’과 대조되며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또 함께 내걸린 조각 작품 ‘현판프로젝트 쿵쿵’은 이슬기가 해외에서 지내며 느낀 한글의 조형성을 재해석해 조각의 형식으로 나타낸 작품이다. 작가는 육중한 홍송 목제 판자를 이용해 장인과의 협업을 거쳐 작품을 제작했다. 조선시대 절, 궁궐, 관청이나 큰 기와집 문 위를 정면으로 점유하던 현판에 주목하고 서예체의 가로쓰기와 세로쓰기 방식으로 장난스러운 캘리그래피처럼 현판에 양각했다. 따라서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작품 속 글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유추해 보며 퍼즐놀이처럼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지하 1층 맞은 편 공간에는 오랜 경력의 통영 누비 장인과의 지속적인 협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불프로젝트 : U’를 만나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언어나 속담의 유래나 기원을 단순화 해 누비의 결 안에서 작가 특유의 회화적 조형미를 엿볼 수 있다. 특히 빛 반사가 뛰어난 진주 명주를 사용하고, 속담이나 말의 의미에 따라 각각 조각천의 누비 방향을 다르게 접목해 말의 뉘앙스를 반영하는 섬세한 작업 과정을 지니고 있다.
 
‘삼삼’ 전시 전경. /아트조선
‘삼삼’ 전시 전경. /아트조선
 
지상으로 올라오면 선사 시대와 신석기 시대 유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성 신체의 표현을 모티프로 한 ‘쿤다리’ 연작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연작은 민속과 토착 문화에서 나타나는 여성성을 새로운 조형적 언어로 접근했다. 거미와 개구리를 원초적인 모양으로 해석한 뒤 자립시킨 점이 시선을 끈다.
 
뿐만 아니라 전시장 1층과 2층에서 더 많은 ‘바가텔’ 연작과 ‘현관프로젝트’를 만나볼 수 있다. 한편 이슬기는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했고, 현재까지도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갤러리 주스 앙트르프리즈(파리), 멘데스우드 DM 갤러리(브뤼셀), 인천아트플랫폼(인천), 라크리에 아트센터(렌) 등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2020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 SBS가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0’의 최종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제12회 부산 비엔날레, 제10회 광주 비엔날레, 제3회 파리 라트리엔날레, 제1회 보르도 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현재 작가의 작품은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프랑스지역자치단체현대미술컬렉션 등에서 소장 중이다. 전시는 8월 4일까지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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