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라의 이방인들이 꺼내놓은 풍경

  • 김현 기자

입력 : 2024.05.17 13:06

싸이 슈나벨 기획, 풍경으로 묶은 작가 5인 그룹전
토머스 채프먼·알레한드로 가르멘디아·루이 자코·루시 멀리칸·밀코 파블로프
6월 15일까지 한남동 페이스갤러리

알레한드로 가르멘디아, Jessica Descending & Ascending in the North Sea, 2007, oil and resin on canvas, 135×135cm. /페이스갤러리
 
풍경을 소재로 회화 작업을 해온 작가 5인의 그룹전 ‘Illusive Place’를 6월 15일까지 한남동 페이스갤러리 3층 공간에서 열린다. 참여 작가는 토머스 채프먼(Thomas Chapman)·알레한드로 가르멘디아(Alejandro Garmendia)·루이 자코(Louis Jacquot)·루시 멀리칸(Lucy Mullican)·밀코 파블로프(Milko Pavlov) 5인으로 저마다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독립 큐레이터 싸이 슈나벨(Cy Schnabel) 기획으로 꾸려진다. 슈나벨은 독립 큐레이터이자 빌라 마그달레나(Villa Magdalena)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스페인의 현대 회화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중견, 신진 작가와 협업하고 있다.
 
각 작가는 회화 속에 등장하는 자연 요소를 상상의 영역으로 전환시킨다. 이를 통해 제시하는 관점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물리적 세계와 삶의 여러 측면을 고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각 작가의 화면은 공간에 대한 추상화된 감각을 자아내고 있으며, 이 감각은 그림 속에서 욕망과 환상, 때로는 고독으로 가득 찬 불안정한 조합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다양한 종류의 심리적 시각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독특한 비현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각자의 관심사가 모두 연결된다. 유토피아, 악몽, 환각, 그리고 파편적 기억이 환상적 공간 안에 구체화 돼 드러난다.
 
‘Illusive Place’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
 
토머스 채프먼은 지난 20년 동안 천문학, 신화, 고대 역사 등에서 영감을 받아 셰이프드 캔버스를 제작해 왔다. 현재는 주로 일상적인 드로잉을 기반으로 추상 회화를 제작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은 ‘Lake Painting’ 연작처럼 여가시간 속 순간을 엿보는 듯한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한 작업으로 이뤄져 있다.
 
알레한드로 가르멘디아는 연작 ‘Pinturas Sucias (Dirty Paintings)’ 중 2점의 회화를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진흙처럼 어둡고 불분명한 색감과 무질서한 표현이 특징이다. 풍경을 ‘더러운 것’이라고 개념화하는 가르멘디아는 회화를 만드는 행위 자체의 정당성에 더불어 오늘날 목가적인 풍경과 같은 대상을 그리고자 하는 충동에 의문을 제기한다. 회화라는 매체가 아방가르드적 경향과 현대미술의 보편적 추세와는 반대되는 영역에 있다는 인식을 고려했을 때, 가르멘디아의 작업 방식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하고 전복적인 제스처로 이해된다.
 
‘Illusive Place’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
‘Illusive Place’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
 
루이 자코는 사물과 그림의 상호작용을 탐구한다. 그의 조각적 회화는 미니멀리즘적 제스처와 도상학적 요소를 결합한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Blinky’(2022)와 ‘Imi’(2022)는 환상과 같은 관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친밀한 공간과 사물을 탈바꿈한다.
 
루시 멀리칸은 지평선을 구도적 장치로 활용해 중력과 인간 영혼 사이의 긴장감을 표현한다. 인간의 영혼은 항상 상승하는 상태로 존재한다고 인식되고 표현되기 때문에 그의 작업에 있어 중력과 인간의 영혼은 서로 상반되는 힘을 나타낸다. 멀리칸은 외부 환경과 신체적 형태가 융합돼 의인화된 풍경을 형성한다. 목재 위에 그려진 그림은 여러 겹의 물감과 진동하는 듯한 선으로 이뤄져 반투명한 표면을 만들어낸다. 그가 ‘주머니’나 ‘구멍’이라고 칭하는 작품 내의 공간은 관람객이 작품 사이를 오갈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문이 된다.
 
밀코 파블로프는 암석, 나무, 물과 같은 유기물을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로 변형시켜 회화에 등장시킨다. 자연주의적 상징과 추상적 표현을 결합해 무한한 규모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각적 경험을 제시한다. 또한 물감 자체를 탐구 대상으로 삼고 작업의 형태, 표면, 구성을 발전시켜 왔다. 작가는 종이 아래 무언가를 놓고 문지르는 프로타주 기법을 캔버스에도 활용한다. 파블로프의 다채로운 색채는 18세기, 19세기 여러 불가리아 화가의 작품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배경은 파블로프가 1970년대 불가리아에서 주요했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미학 대신 종교적 미술로 관심을 옮기는 계기가 됐다. 파블로프의 작품은 시간의 다양한 순간이 교차하는 개념적 차원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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