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5.08 19:11
페이지룸8
갤러리 언플러그드
몇 년 사이 미술시장은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한때는 많은 사람이 유입되며 과열 양상도 보였지만 현재는 다시 잠잠해진 듯 차분한 분위기가 감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관계자들은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또 급변하는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에 <아트조선>은 문 연 지 5년 이내 갤러리 5곳을 선정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시리즈 두 편으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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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미술시장은 기록적인 호황기를 맞았다. 많은 양의 돈이 미술시장으로 흘러들어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함께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역대 최초로 국내 미술품 유통액이 1조 원을 넘겼다. 또한 전년도(2021년) 대비 갤러리는 233곳이 새로 문을 열어 831곳이 됐고 아트페어는 6개가 증가해 71개가 됐다. 미술 유통 영역 종사자 수는 734명이 증가한 3309명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급격히 증가한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미술시장 역시 여러 방면으로 확장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2023년 엔데믹 이후 시행된 전 세계적 긴축정책의 영향으로 경제는 불황기에 접어들었다.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갤러리는 늘어났는데 미술시장은 호황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미술시장을 정의하는 단어가 ‘확장’에서 ‘각자도생’으로 한순간에 바뀌어버린 상황. 특히 새로 진입한 갤러리에게는 여러모로 당혹스러운 환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경제 동향’이나 ‘미술시장 전망’ 같은 단어는 거리가 멀다. 흘러가는 물결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노를 젓는다. 이들은 참신한 시각과 기획력으로 무장한 채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차별화된 '맛'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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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
페이지룸8은 책을 뜻하는 ‘페이지(Page)’와 공간을 뜻하는 ‘룸(Room)’, 그리고 두 가지가 유기적으로 얽혀있다는 의미를 담은 모양의 ‘8’을 합친 단어다. 삼청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과 마주 보고 있는 전시 공간은 아담하지만 젊은 작가들의 빛나는 개성으로 가득 차 있다. 박정원 페이지룸8 디렉터를 만나 물었다. “왜 ‘페이지’인가요?” 미술계에서 일하며 많은 전시를 경험한 박정원 디렉터는 홍보, 기획 등 전시를 이루는 많은 요소 중에서도 특히 ‘글’의 중요성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전시가 끝나도 기획자의 시선은 글로 남는다는 사실이 와닿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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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페이지룸8에서는 전시와 연계한 아트북을 제작한다. 박정원 디렉터는 테이블 위에 책을 꺼내 보였다. 보자마자 “와, 이거 책 맞나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만큼 개성 있고 한 번 보면 책장을 넘겨보지 않고는 못 배길 디자인이다. 페이지룸8은 단순 도록의 개념보다는 조금 더 전시와 밀접하도록 책의 물성을 이용해 주제를 반영한 디자인의 아트북을 선보인다. 예로, 전시를 가졌던 작가 정직성은 붉은 벽돌의 ‘연립주택’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붉은 벽돌을 그대로 꺼내온 듯한 직육면체 디자인의 아트북으로 제작했다. 무게도 2kg이 넘는다고 한다. 작가 고니의 경우 드로잉 136점으로 구성한 플립 북 ‘바람으로 가는 사람’을 출판했다. 책장을 넘기면 자연스레 바람이 불며 안에 그려진 인물이 스톱모션으로 움직인다. 재난의 상황을 설정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인물에 주목하는 방식을 지속하는 작가의 작업과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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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다. 한 작업만을 집어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이 작품 시리즈’, 드로잉과 관련해 장르를 넘나드는 2인전을 선보이는 등 참신한 기획도 인상적이다. 매년 초에 열리는 '옥토(OCTO)' 기획전의 경우 한 해 동안 페이지룸8에서 전시를 선보였던 작가들의 출품작을 되짚어보고, 시점을 바꿔 한 번 더 사유해보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가늠한다. ‘Octo’는 라틴어로 ‘8’을 의미하는 어원이며 페이지룸8의 무한한 지속성을 상징한다. 이러한 다채로운 기획으로 인해 다양한 연령층의 컬렉터에게 페이지룸8의 이름을 알렸으며 '언제나 볼만한 전시를 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각인시켰다. 또한 전시 '옥토(OCTO)'는 여러 작가의 방향성을 가늠해 보는 것뿐만 아니라 페이지룸8의 지속성까지 동시에 짐작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또한 이번 5월에 열릴 ‘아트부산’ 퓨쳐 섹션에도 선정돼 작가 한지민의 작품을 출품한다. 한지민은 작년 페이지룸8에서 열린 판화 프로젝트 전시에 참여한 바 있다. 작년 전시는 기존에 저평가돼 있던 장르로서의 판화를 조명하고, 석판화, 동판화, 리노컷, 설치까지 여러 기법을 활용한 네 명의 작가를 소개했다. 이에 대해 박정원 디렉터는 “작년에도 함께 했던 한지민 작가는 판화 장르 안에서 섬세한 칼선을 이용한 독특한 리노컷을 선보입니다. 이를 통해 판화라는 장르를 재발견할 수 있었고 관람객과 좋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번에도 함께 하게 됐습니다. 작가의 초창기 작업부터 연대별로 작품을 선정해 전시할 예정입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페이지룸8은 ‘아트부산’ 참가 이후 5월 15일부터 작가 임순남 개인전 ‘쿨 밸리 콤마’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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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압구정 로데오거리 인근에 위치한 갤러리 언플러그드는 건물 2층에 위치해 있다. 문화 예술의 힘을 통해 ‘나만의 조용한 공간’을 찾기 원하는 예술 애호가를 위해 문을 열었다. 갤러리 언플러그드는 과감한 작가 선정으로 관람객에게 ‘나만 알고 싶은 작가’를 엄선해 소개한다. 개인전을 처음 가지는 국내 작가는 물론,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 작가까지 폭넓게 전시한다. 가장 큰 차별점이 뭐냐는 질문에 김성옥 갤러리 언플러그드 대표 역시 “국적을 불문하고 해외 작가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점”이라고 답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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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언플러그드가 다양한 페어에 소개하는 작가와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번 ‘아트부산’에서는 그리스계 영국 작가 코스타스 파파코스타스(Kostas Papakostas)의 작품을 출품한다. 코스타스는 작년 5월에 열린 ‘조형아트서울’에 미구엘 앙헬 퓨네즈(Miguel Angel Funez), 올라프 울브리히트(Olaf Ulbricht), 틸드 그리너룹(tilde grynnerup), 아방(Abang), 이선근과 함께 소개됐다. 해외 작가의 전시를 기획하는 일은 국내 작가에 비해 운송비나 언어, 판매 등의 어려움이 따른다. 그런데도 해외 작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이유를 물었더니 “사실 해외 작가라고 한정하지는 않습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저희의 기준에 맞다면 상관없어요. 그러나 제가 주로 해외에서 업무를 진행해 오다 보니까 아직까지는 눈에 들어오는 작가가 해외 작가가 많습니다. 낯선 작가를 발굴하고 소개해서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갤러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갤러리 언플러그드는 '미술시장'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부흥하는 등 변화가 이루어진 것은 맞지만 결국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라며, 외부의 상황을 신경 쓰기보다는 갤러리로서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전시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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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앞으로의 계획과 방향성을 묻는 질문에 “단기적인 계획은 일본 작가와 태국, 대만 작가를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선보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 호주 작가와 미국 작가 또한 추후에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장기적인 계획은 저희와 함께한 작가들이 국내에서 기반을 다지고 미술관에도 소개가 되고 수집이 되면서 작가와 갤러리가 함께 알려지고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합니다”라고 밝혔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