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사진으로 묻는 오늘의 시간…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

  • 김현 기자

입력 : 2024.04.15 17:36

사진 소장품 200여 점
8월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홍일, 기둥1-4, 1996, 종이에 젤라틴실버프린트. /아트조선
이강우, 길-속도 운명, 1996, 젤라틴실버프린트, 철, 컬러 스프레이, 텍스트, 244x504cm. /아트조선
 
이국의 어느 부족은 사람이 카메라에 찍히면 영혼을 빼앗긴다고 여겼다. 카메라는 빛을 뿜어 피사체를 감쌌다가 다시 카메라 바디로 빛을 불러들여 필름에 상을 맺히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영혼이 카메라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여기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사진은 찰나의 순간 작품이 완성된다. 그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때로는 며칠, 때로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 회화 작품과는 다르다. 카메라의 셔터 속도는 대개 60분의 1초로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다.
 
사진은 세 개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찍을 때, 인화할 때, 결과물이 전시될 때. 회화 작품은 과거부터 작품이 전시되는 현재까지 하나의 시간으로 흐른다. 그러나 사진은 그렇지 않다. 사진 속 과거의 풍경은 지금 없다. 사진 속 ‘그때 그곳’이 전시장의 ‘지금 이곳’으로 새롭게 재해석될 뿐이다.
 
8월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MMCA 사진 소장품전: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동명의 영화를 참고한 것으로, 영화는 떠난 지 20년이 넘은 고향으로부터 온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한다. 영화에서 사진이 과거의 구체적인 시간으로 주인공을 소환한 것처럼 이번 전시 역시 사진이 관객을 특정한 풍경과 시간에 옮겨놓기 위해 기획됐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 1316점 중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다루는 사진 200여 점을 선별한 후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선보인다. 삶의 물리적 기반이 되는 도시를 보여주는 ‘눈앞에 다가온 도시’,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개인의 삶이 담긴 ‘흐르는 시간에서 이미지를 건져 올리는 법’,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역사적, 사회적 사건들을 다룬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시대적 풍경 변화를 서술하는 동시에 개인의 삶을 유추하게 하며, 더불어 사진 매체의 기술적 변화 역시 감지하게 한다. 또한 195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쳐 제작된 여러 작가의 사진을 한 자리에서 보여줌으로써 시대와 세대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재인식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 전시 전경. /아트조선
노순택, 내장 시리즈, 2010-2011(2013 인화), 종이에 디지털잉크젯프린트, ed. 1/3. /아트조선
 
첫 번째 ‘눈앞에 다가온 도시’에서는 김천수, 구본창, 박찬민 등의 작품으로 도시의 풍경을 조망한다. 작가들은 대체로 서울을 배경으로 촬영했으나, 흑백, 블러, 분할 등의 기법으로 도시를 표현해냈고 이를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기 힘들었던 ‘도시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저마다의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좌)노기훈, 두 나무, 2017(2021 인화), 종이에 디지털잉크젯프린트, ed. 1/5. (우)노기훈, 옐로 데이스_기숙사, 2016(2021인화), 종이에 디지털잉크젯프린트, 99x124cm, ed. 1/5. /아트조선
 
‘흐르는 시간에서 이미지를 건져 올리는 법’에서는 노기훈, 전미숙, 김미현, 이강우 등의 작품으로 우리의 생활을 보다 근경으로 들여다본다. 생활용품의 기종과 브랜드,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관광지의 모습 등은 사진에서 시대를 표상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사진 속 인물의 옷차림, 간판 디자인, 헤어스타일은 특정 시대를 풍미했던 생활 양식과 문화를 보여준다. 위와 같은 작품을 볼 때, 그 시대를 겪은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이후 세대는 돌고 도는 시간의 연속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권도연, 북한산, 검은입, 2019(2023 인화), 종이에 디지털잉크젯프린트, 89x133.6cm. /아트조선
송상희, 매향리, 2005, 종이에 크로모제닉프린트, 120x120cm. /아트조선
 
마지막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에서는 앞선 두 섹션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와 일상이 형성되는 방식에 영향을 준 사회적, 정치적 사건을 다룬다. 작품에서 발견되는 한국 전쟁, 남북 분단, DMZ, 후쿠시마 대지진, 동물 유기 등과 같은 사안은 간헐적이지만 동시에 강력한 위력을 갖는다. 어떤 것은 개인에게 무관할 때도 있지만 때론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기도 할 정도로 거대한 담론을 유발한다. 오노 다다시(Ono Tadashi), 한성필, 권도연 등의 작품이 내걸린다.
 
전시장 한편에는 질문과 답변을 남길 수 있는 엽서가 마련돼 있다. /아트조선
작성한 엽서를 벽에 걸어 전시할 수 있다. /아트조선
전시장을 찾은 한 관람객이 남긴 답변. /아트조선
 
관람객은 전시를 보면서 결국 사진 속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속한 세상이 어떤 구조와 시간으로 이루어지며, 어디에 서 있고,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사진은 당연하게도 ‘사진을 찍는 행위’가 동반된다. 이 사실을 상기하며 전시 대상 작가들이 과연 무엇을 찍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고민해 보면 이번 전시를 더욱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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