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3.28 11:34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작업한 근작
4월 27일까지 홍콩 솔루나 파인아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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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의 화면 안에 글자와 숫자 기호가 가득하다. 일정한 패턴을 형성하는 것 같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도, 뜬금없이 등장한 ‘초코파이’나 작가가 오려 붙인 ‘김 포장지’가 분위기를 환기한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면 두텁게 바른 물감을 긁어 숫자를 그려냈음을 알 수 있다. 물감 위 삐뚤빼뚤 쓰인 글자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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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오세열의 작품은 낙서 같기도, 단순하기도 하지만 이면에 내공과 밀도가 숨어있다. 단순히 화면 위의 표현뿐 아니라 여러 번 쌓아 올린 물감으로 깊이감을 형성한다. 따라서 작품을 처음 봤을 때와 두 번째 봤을 때 느낌이 다르고, 짧게 봤을 때와 오래 봤을 때의 감상 역시 다르다. 이에 대해 작가는 “그림을 오래 보게 만드는 건 작가의 의무”라며 자신의 작품관을 설명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숫자는 희로애락을 상징한다. 작가는 어릴 적 쓰던 몽당연필로 숫자를 쓰는 연습을 했던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또한 주민등록번호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은 숫자와 함께 평생을 살아가고, 숫자에 울기도, 행복해하기도 하며 목숨을 걸기도 한다. 작가는 이 부분에 주목하며 복잡한 한국 현대사회에 어린아이 같은 동심과 즐거움을 주고자 작품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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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오세열의 작품이 홍콩에 내걸린다. 오세열 개인전이 4월 27일까지 홍콩 솔루나 파인아트 갤러리(대표 이은주)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한국 모노크롬 운동의 정수를 이어받아 낙서, 오브제, 콜라주 등을 작품에 접목시킨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근작을 선보이며, 이를 통해 회화의 전통적인 관념에 도전한다. 작가는 상징보다는 이미지 그 자체에 집중하면서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를 만들어내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신 내부의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한편 오세열은 한국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으로 프랑스, 벨기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20회 이상 가졌고, 50회 이상의 그룹전과 아트바젤, 아트부산, 키아프, LA 아트쇼 등의 페어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