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하게 쌓아 올린 세필로 ‘그리기’에 집중한다… 김홍주 개인전

  • 김현 기자

입력 : 2024.03.25 15:40

1970년대부터 2024년까지 작업한 60여 점 출품
5월 19일까지 성곡미술관

무제, 2010년대, 한지에 연필, 먹, 수채, 74.5×47cm. /성곡미술관
무제, 1980년대 중반, 종이에 콜라주, 색연필, 먹, 수채, 155×107cm. /성곡미술관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면 수천 번 넘게 그어낸 선이 보인다.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간다. 색도, 길이도 다르다. 캔버스, 종이, 한지 등 재료를 가리지도 않는다. 김홍주는 그저 반복적인 드로잉을 통해 관람객 앞에 자신만의 감각을 펼쳐놓는다.
 
작품으로부터 한 발 떨어지면 무한한 선이 만들어낸 형상이 보다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작품이 주는 정서와 분위기가 한층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또한 형형색색의 선이 겹쳐지며 만들어낸 총체적인 ‘색의 합’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작가 고유의 순수함을 표상한다.
 
무제, 2010년대, 종이에 연필, 먹, 수채, 59×81.5cm. /성곡미술관
무제, 1970년대 후반, 종이에 연필, 수채, 54.5×40cm. /성곡미술관
 
김홍주 개인전 ‘김홍주의 드로잉’이 5월 19일까지 성곡미술관 1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부터 2024년에 이르기까지 약 55년간 발표되지 않았던 작품 60여 점이 내걸린다. 작가는 캔버스 천의 가벼운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투명한 바인더로 엷게 밑칠을 한 뒤 작품을 그려나간다. 가는 세필로 묽은 수채 물감을 찍어 몇 날 며칠 그리다가 그대로 미뤄놓고, 또 며칠 후에 손을 대기도 하고, 몇 달 후에 다시 꺼내 그리며 때로는 해를 넘기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캔버스를 비롯한 한지, 종이 등 다양한 재료 위에 그려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무한히 중첩된 부드러운 선이 부드러운 형상의 기초가 돼 생명과 감각이 그 선을 통해 표출된다. 점과 면 사이 존재하는 선의 아름다움이 회화의 근본적 토대가 된다.
 
‘김홍주의 드로잉’ 전시 전경. /김현 기자
‘김홍주의 드로잉’ 전시 전경. /김현 기자
 
한편, 작가는 1969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1년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당시 개념미술을 연구하던 현대미술그룹 S.T에 참여하며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관념이 주가 되는 개념미술의 논의에 피로감을 느껴 S.T를 탈퇴하고 보다 근본적인 드로잉에 몰두하며 다양한 회화적 실험에 나선다.
 
1970년대에는 주로 오브제와 이미지를 결합한 ‘사물로서의 회화’ 작업을 발표한다. 청계천의 고물상에서 창문틀과 거울, 차 유리창과 같이 버려진 물건을 사다가 합판과 천을 덧대고 그 위에 극사실적 형상을 그려나간 그의 초기 작업은 캔버스라는 ‘그리기’의 틀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였다. 1996년에는 꽃과 잎, 낙엽처럼 자연물에서 가져온 형상을 회화에 도입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후기 작업은 세밀한 선을 무수히 쌓아 올리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며 김홍주의 대표 작품으로 거듭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오랜 시간 쌓아온 작가의 회화 세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떨까.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