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3.22 17:58
구순 맞은 작가 김윤신
국내 이주 후 첫 개인전
4월 28일까지 소격동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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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내 작품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번에 한국으로 이주를 결심한 건, 어떻게 보면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지요.”
구순을 바라보는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은 1959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뒤 196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수학했다. 이후 한국으로 귀국해 여러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으나, 자신 내부의 예술적 열망이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마침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던 조카가 ‘넓게 펼쳐진 이곳의 지평선이 너무도 아름답다’라고 말한 것을 듣고 무작정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났다.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전시를 가졌고,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개관했으며, 수많은 미술적 여정을 이어간 것이 40년이다. 작가는 좋은 공동묘지를 예약해 뒀다며 남은 평생 아르헨티나에서 살게 될 줄 알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가진 개인전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전시를 찾은 수많은 기자와 관람객을 눈으로 확인한 작가는 무척이나 놀랐다고 소감을 남겼다. 그들의 애정이 오롯이 느껴졌기 때문. 거기에 더불어 국제갤러리와도 연이 닿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받고, 동시에 한국에서도 전시를 더 이어 나가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4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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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김윤신의 개인전 ‘Kim Yun Shin’이 4월 28일까지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작가는 한국에서의 뿌리, 프랑스에서 수학한 경험, 아르헨티나의 자연과 정취를 모두 담은 독자적인 시각 문법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한국으로 거점을 옮겨 꾸리는 첫 번째 전시로, 나무 고유의 성정을 존중한 탐구 정신을 반영한 ‘합이합일 분이분일’ 철학에 기반한 목조각 연작과 꾸준히 지속해 온 회화 작업 등 총 50여 점의 작품을 K1과 K2에 걸쳐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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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에서는 ‘합이합일 분이분일’의 근원이 되는 1970년대 작품 ‘기원쌓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작가가 꾸준히 매진해 온 원목 조각과 함께 회화 작업의 일부가 소개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고찰하며 초월적 존재에 닿고자 하는 염원의 정서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전통의 해석에도 관심을 보이며 민간신앙 속 장승이나 돌 쌓기 풍습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 특징이다.
K2에서는 아르헨티나 대지가 가진 특유의 에너지와 생명력을 연상시키는 회화와 회화 조각을 대거 선보인다. 작가는 “그림을 해야 조각을 하고, 조각을 함으로써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설명하며 조각과 회화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규정한다. 조각과 마찬가지로 표면의 분할을 특징으로 하는 작가의 회화는 남미의 토속색과 한국의 오방색에서 영감받은 원색으로 제작되는가 하면, 작가의 환경과 심경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도 한다.
또한, 몇 해 전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져 일상 속 규제에 직면해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주변의 나무 조각을 모아 작업하는 새로운 방식에 몰두했다. 목재 파편 내지는 폐목을 재활용해 자르고 붙여 색을 입힌 회화 조각은 회화, 혹은 조각의 경계를 허물고 또 하나의 ‘합이합일 분이분일’의 가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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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은 나무를 좋아한다. 작품에 적합한 나무를 발견하면 생명력을 가진 이 재료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하며 한참이나 들여다본다고 한다. 항상 곁에 두고 생활하며,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마침내, 재료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듯한 순간을 느낀다. 비로소 그때부터 작업에 들어간다. 거침없이 편집하고, 9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세계를 오가며 경험한 정서와 감각을 오롯이 담아낸다. 때로는 색을 칠하고, 때로는 거침없이 자른다. 열린 마음으로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는 도전정신은 멈추지 않는다. 김윤신은 아직도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