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3.19 16:16
●전시명: 환각몽 (夢) Mind-Bending Reverie
●기간: 2024년 3월 14일(금) ─ 4월 9일(금)
●장소: 프람프트 프로젝트(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로 17길 28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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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봄의 한가운데 프람프트 프로젝트는 추상에 대한 탐구와 탐색을 하는 작가 박현정, 이영준의 2인전 <환각몽(夢) Mind-Bending Reverie>을 3월 14일부터 4월 9일까지 진행한다. 이번 전시에서 두 작가는 연구적이고 집중적인 자세로 각자가 지향해온 추상에 대한,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우연적이면서 동시에 추상이 지닌 정신적인 힘, 내적 필연성을 드러내고 이를 시각화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추상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들의 세계관에 대한 변화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시각적으로는 일루전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수단과 장치로 작용된다. 이는 그것의 표현이 물적(物的), 객관적인 대상을 떠나 주관적인 순수 구성을 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추상미술이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20세기 예술가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저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Über das Geistige in der Kunst)』(1912)에 따르면 그는 미술이 나타내는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닌 정신성이나 관념과 같은 내적인 것이라 언급했다. 작가의 내적 실재와 탐구를 통해 탄생한 작품은 궁극적으로는 감각과 시각, 물리적인 것을 넘어선 예술로 향하는 소산이자 산물인 셈이다.
기하학적 요소들에 시각언어로서의 역할을 부여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이미지를 구조화하는 작가 박현정. 그는 붓의 움직임과 아이패드와 같은 디지털 매체를 혼용하여 작업을 한다. 과거에 그렸던 그림 속 요소들을 재활용한다는 그는 스스로 ‘자기 참조적 그리기 시스템’ 이라 명명하는데 작업 과정 자체가 자기 폐쇄적인 데에 그 이유가 있다. 박현정이 말하는 자기 참조적 그리기 시스템이란 이미지를 구상하면서 외부 레퍼런스나 특정 형상, 사물 등을 재현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로 인해 도출되는 완결물은 어떠한 서사나 의미, 무엇도 표상하지 않지만 이미지 내에 등장하는 요소들에게는 각각의 역할이 주어진다. 박현정의 화면 위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질서 있게 나열된 요소들의 모습은 작가의 집약적인 연구로부터 출발한 추상으로 향하는 자유로운 정신적 유희로 규정지을 수 있겠다. 그에게 추상은 회화의 전통을 부수고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의 회화에 접근해가는 연결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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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흩날리는 부유물과 수직과 수평을 거침없이 횡단하는 획의 정렬은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이영준의 추상이다. 그의 초기작은 독일의 문화적 영향을 반영한 작품이 대부분이었으나 이후 추상의 세계로 진입하면서 추상과 구상을 자유로이 섞어가며 재료에 구애받지 않은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창출해낸다. 그는 화면을 여러 컷으로 분할하고 레이어를 적층하면서 시간성과 공간성을 한 화면에 동시 다발적으로 함축한다. 사용되는 다양한 재료, 기하학의 형태, 컬러 팔레트는 서로 이질적이고 상이한듯 보이면서도 그 안에서 긴밀하고 일정한 율동성을 보인다. 격자나 특이 형태의 모습으로 혼재하는 그것들은 레이어가 쌓여가는 과정에서 회화적 패턴의 모습으로 우연히 발생하기도 하고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자유롭게 존재하기도 한다.
한 이미지로써의 추상은 우연으로 가장한 통제 불가한 요소들에 더해 제약적인 조건이 동일하게 고려된다. 하나 둘 축적되는 대상의 움직임은 자유롭게 화면 위를 부유하며 시각적 유희를 불러일으키고, 좁은 평면은 그 과정을 고집스럽게 담아둔다. 동적인 색채의 사용, 예고 없는 출현, 패턴화된 이미지의 반복 등은 작가들이 계획해온 추상에 대한 탐구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며 이는 물질적 조건을 넘어선 작가의 정신적 발현으로 볼 수 있다.
현실로부터 각인된 정신적 표상이나 감정을 기반으로 꾸게 된다는 환각몽(夢)처럼 이번 전시는 단순히 일루전의 반영이나 함축적인 의미보다 그 자체가 작가의 정서와 주관을 토대로한 실재이며 재현인 회화의 정렬로 우리 내면을 심원하게 만들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박현정, 이영준 두 작가가 보여주는 추상이라는 사각의 틀 안에서 기억 저편까지 달려야 할 꿈을 꾸고 무한의 황홀경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