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본태에서 발아한 ‘김호정’의 예술 세계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4.03.15 18:03

한국 첫 개인전 ‘Soil, Truth, Beauty’, 31일까지 한남동 뉴스프링프로젝트
흙 본연의 빛깔 살린 세라믹 신작 등 100여 점 소개
손의 감각 통한 ‘흙’의 물성 탐구… 세라믹과 회화 경계 넘나드는 조형 언어
작품 직접 사용하고 체험하는 ‘차회(茶會) 프로그램’ 운영

김호정 개인전 ‘Soil, Truth, Beauty’ 전경. /윤다함 기자
김호정 개인전 ‘Soil, Truth, Beauty’ 전경. /윤다함 기자
김호정 개인전 ‘Soil, Truth, Beauty’ 전경. /윤다함 기자
 
자연은 영원한 이상향이다. 김호정(36)의 예술 세계가 흙을 근간으로 삼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자연을 향한 동경과 경외심을 흙, 즉 자연의 원형과 가장 가까운 본질을 재료로써 도자, 회화, 오브제 등 다채로운 매체로 표현해 오고 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쉼을 경험하게 하는 자연의 근사한 매력과 힘이 김호정의 작업에서도 발견되는 배경이다. “자연의 공간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힘이 담긴 곳입니다. 우리의 시야와 인간의 힘을 넘어 무한히 확장되는 광대한 곳의 위대함과 이를 직면할 때면 경이로움과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곤 하죠.”
 
국내는 물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해외에서의 활발한 전시 활동을 펼치며 고유의 세라믹 작업으로 국제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은 도예 작가 김호정의 한국에서의 첫 솔로쇼가 마련됐다. 그의 개인전 ‘Soil, Truth, Beauty’가 이달 31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뉴스프링프로젝트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100여 점에 이르는 근작과 신작을 내건다. 대표작인 항아리 작업 ‘Blue Moon Jar’는 물론, ‘Black Moon’, ‘Earth’ 등과 함께 회화 연작 ’Captured Landscape‘와 목탄 드로잉 등을 소개한다. 
 
김호정 개인전 ‘Soil, Truth, Beauty’ 전경. /윤다함 기자
김호정 개인전 ‘Soil, Truth, Beauty’ 전경. /윤다함 기자
김호정 개인전 ‘Soil, Truth, Beauty’ 전경. /윤다함 기자
 
작가는 경희대 도예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홍익대 산업도예학 석사, 영국왕립미술대학에서 도자유리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뉴욕 Space776(2022), 프랑스 Gallery Jo Yana(2021), 영국 Make Hauser & Wirth Somerset, Thrown Gallery(2022) 등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고, 2021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특선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도예학과에서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에서 김호정을 만났다. 작가는 출품작 한 점 한 점을 짚어가며 이들이 탄생하기까지의 예술적 모색과 고찰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다음은 작가와의 대화를 문답 형식으로 구성한 것이다. 
 
김호정 작가가 출품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다함 기자
 
─자연의 꾸밈없는 아름다움과 이에 대한 찬미를 담아 도예 작업을 이어왔어요. 항아리 표면을 자세히 보면, 때로는 산수 같기도, 때로는 물결치는 바다 같기도 한 모습이 펼쳐지는 듯합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과 산천, 넓은 바다의 무한함과 압도감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해요. 자연이란 의도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천연의 본태 그 자체가 아름다운 법이죠. 계산하고 만들어낸 인위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자연 고유의 품위를 닮고 싶었어요. 도자 표면의 반점이나 무늬는 제가 계획하고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우연이 만들어 준 풍경입니다. 작업 과정에서 인위적인 개입 없이 자연스레 형성된 형상인 거죠. 힘들고 지칠 때 자연경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로가 될 때가 있잖아요. 답답할 때 도시인들이 산과 바다를 찾아 기분 전환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이때 느낀 힐링이 일상의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 제 작업을 보는 모든 이들이 잠시나마 망중한을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김호정 개인전 ‘Soil, Truth, Beauty’ 전경. /윤다함 기자
김호정 개인전 ‘Soil, Truth, Beauty’ 전경. /윤다함 기자
김호정 개인전 ‘Soil, Truth, Beauty’ 전경. /뉴스프링프로젝트
 
─하늘과 바다를 상징하는 푸른색은 작가님의 예술 세계를 대표하는 컬러입니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이러한 블루 외에도 자연에서 온 다채로운 색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적토와 흑토 등을 도입해 컬러 외연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푸른색이 하늘과 바다를 닮아 자연을 향한 경외심을 보여줬다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붉은빛이나 검은빛을 띤 세라믹 작업을 통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적토와 흑토 등 채굴된 흙 본연의 색깔을 그대로 드러내어 자연에서 온 본태를 발견할 수 있어요. 자연은 언제나 제게 영원한 이상향입니다. 
 
김호정 개인전 ‘Soil, Truth, Beauty’ 전경. /뉴스프링프로젝트
김호정 개인전 ‘Soil, Truth, Beauty’ 전경. /윤다함 기자
 
─이번 개인전에서는 항아리부터 회화, 드로잉 등에 이르기까지 작업 세계 전반을 선보입니다. 특히 도자기로부터 캔버스로까지 확장된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어요. 캔버스 작업이 기인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캔버스 작업으로 확장되기 이전에는 도자와 함께 드로잉 작업에 몰두했어요. 그렇게 드로잉과 연구작을 지속적으로 실험하는 과정에서 흙이나 돌, 모래 등을 재료로 삼아 붓 대신 손을 도구로 화면(畫面)을 채울 때의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이를 거듭하다 보니 자연스레 바탕지가 캔버스로도 옮겨오게 됐습니다. 원형의 형에 가까운 이미지들이 산재한 화면은 제 세라믹 작업으로부터 기인한 셈이죠. 제 항아리 표면에서 작은 반점들을 발견하실 수 있는데, 이를 확대해 캔버스 위로 갖고 온 거예요. 제 세라믹 작업과 캔버스 작업의 뿌리가 똑같은 것이죠. 손으로 항아리를 빚듯이, 손으로 캔버스 위의 이미지를 빚어냅니다. 제 작업의 근간인 흙을 여러 재료들과 혼합해 질감과 부피감을 보여주고, 회화와 도자의 예술적 경계를 무너뜨리는 실험적 모색을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김호정 개인전 ‘Soil, Truth, Beauty’ 전경. /뉴스프링프로젝트
김호정 개인전 ‘Soil, Truth, Beauty’ 전경. /뉴스프링프로젝트
김호정 개인전 ‘Soil, Truth, Beauty’ 전경. /윤다함 기자
 
─지난해 뉴욕에서 열린 ‘Sarang’전(展)에서 행잉 작업 첫선을 보였어요. ‘사랑의 씨앗’(2023)은 관객이 직접 만져보며 경험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죠.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님의 생활 기물을 차 도구로 직접 사용하는 차회(茶會) 프로그램을 운영하시잖아요. 관객과의 교감이 작가님에게 중요한 역할과 예술적 소재로서 자리 잡게 된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제 손에서 탄생되는 작품이 전시장에 내걸린 뒤에는 이를 어떻게 즐기고 바라보느냐는 오롯이 감상자와 사용자에게 달린다고 생각해요. 작품의 새로운 생명력과 시간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거든요. 이들 감상자와 사용자에 의해 작품이 또 다른 예술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나 할까요. 그렇기에 관객과의 교감은 언제나 제게 주요한 예술적 소재 중 하나랍니다. 단순히 정적으로 놓인 소극적인 작품이 아닌, 이번 차회 프로그램 참여하시는 분들의 손에 의해 자유롭고 역동적으로 사용되고 느껴지는 작품의 모습을 통해 저도 몰랐던 제 작업의 새로운 면면을 발견하게 된 기분이에요. 작가의 손에서 벗어나 체험자의 손으로부터 비로소 의미가 완성되고, 이를 만들고 경험하는 모두의 감각으로 만들어진 조형 언어와 아날로그적인 가치를 찾아내시길 바랍니다.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며 전력을 다해 쉴 틈 없이 달려왔는데, 예정된 다음 계획이 더더욱 궁금해져요. 
 
이번 전시가 끝나면 곧이어 뮌헨에서의 그룹전이 이어집니다. 오는 4월부터 6일까지 Galerie Handwerk에서 열리는 전시 ‘Water, Waves, Ripples. Water as a Source of Inspiration’에 초대됐어요. 이후 하반기에도 국내에서의 그룹전이 예정돼 있답니다. 전시와 더불어, 제 내면과 작업 세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이번 개인전에서 그간 확장된 저의 신작들과 실험적인 모색들을 펼쳐 보이며 스스로 들었던 질문과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스터디가 어떻게 흘러갈지 정확히 정해진 바는 없지만, 이러한 소중한 시간을 통해 한결 견고해진 예술 세계를 소개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어요.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