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가능성 가진 ‘검은’ 색 탐구… 박미나 개인전

  • 김현 기자

입력 : 2024.03.13 13:30

4월 27일까지 페리지갤러리

‘검은’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선과 색, 언어와 기호를 통해 회화의 본질에 대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박미나(51)의 개인전 ‘검은’이 4월 27일까지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린다. 작가의 작업은 재료를 수집하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이번 전시 역시 자신이 파악하고 모을 수 있는 검은색 펜과 물감을 최대한으로 모았다. 그 후 재료에 기반한 자신만의 규칙 안에서 색을 칠하고 선을 긋는 행위에 온전히 집중하며 수집과 반복을 통해 가능성의 한계를 탐구한다.
 
‘검은’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검은’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이번 전시는 크게 세 개의 연작으로 나뉜다. 2006년부터 2024년까지 진행한 ‘Black Pens’는 시판되는 검정 펜으로 A4 용지에 일률적인 간격의 선을 그어 나간 작업이다. 이렇게 완성된 498개의 드로잉 밑에는 펜의 상표와 고유번호가 적혀있고, 작가는 이를 따로 목록화한다. ‘2014-Black’은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는 검은색 유화물감을 수집하고 정방형의 화면을 온전히 칠해 55개의 검은색 면을 만들었다. ‘2014-BGORRY’, ‘2024-BGORRY’은 6가지 색을 픽셀 하나하나에 채워 넣어 검은색을 분해해 놓은 듯한 화면을 구성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다만 두 작업은 화면 속 픽셀의 크기가 다르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같은 검은색이지만 여러 회사가 제작한 재료로 표현된 차이점에 주목하며, 사회 문명적 규범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또한 관람객은 검은색에 대한 차이를 인식하게 되면서 언어와 색상의 상관관계, 그리고 검은색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전시장 벽을 가득 채운 ‘Black Pens’ 연작은 고통을 수반하는 집요한 기계적 수행의 과정에서 의식적 통제와 무의식적 반복 사이에 작가가 가진 사고의 흐름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연작에서도 반복적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움직임의 차이를 볼 수 있으며, 이는 사람의 인식 체계와도 비슷하다. 보통 사람의 의식은 의도적으로 떠올리는 생각과 무의식이 공존하기 때문.
 
또한 검은색은 어둠과 죽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전시 ‘검은’에서의 검은색은 깊은 물 속을 볼 때나 머나먼 우주를 상상하는 것처럼 심연에 잠재된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경계가 없는 무한한 잠재성을 지닌 시공간으로도 볼 수 있는 셈. 관람객은 작가의 집요한 작업을 통해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결과에 머무는 종착점이 아니라 그다음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자 출발점이기도 하다.
 
‘검은’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한편, 작가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아뜰리에 에르메스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일민미술관, 세화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작가의 작품은 경기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의 기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