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꽃, 사람도 꽃”… ‘꽃의 화가’ 김종학의 인물화란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4.03.08 18:03

개인전 ‘사람이 꽃이다’, 4월 7일까지 현대화랑

자화상, 2008, Oil on canvas, 73x60.5cm. /현대화랑
김종학 개인전 ‘사람이 꽃이다’ 전경. /윤다함 기자
김종학 개인전 ‘사람이 꽃이다’ 전경. /윤다함 기자
 
“내게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으로 느껴진다. 사람을 보면, 가족이라 해도 제각각 생김새가 다르다. 같은 사람도 다른 환경 속에서는 다르게 보인다. 꽃도 꽃이고, 사람도 꽃이고, 새도 날아다니는 꽃이며, 사람이 꽃이다.”
 
김종학에게 인간이란 꽃과 같아서 아름다움이나 추함을 구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저 꽃처럼 서로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사람이 꽃처럼 다양하게 생겼다는 점에서 흥미로움을 발견하고 꽃과 함께 주요 소재로 삼게 됐다. 그의 인물화 속 사람은 예쁘고 잘생긴 모습이기보다는 자연스럽고 개성이 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시골 버스를 타면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드물고 개성이 강한 사람이 많은데, 이 때문에 일부러 시골 버스를 타곤 했다. 세상에는 그리고 싶은 얼굴이 많다.”
 
김종학 개인전 ‘사람이 꽃이다’ 전경. /현대화랑
김종학 개인전 ‘사람이 꽃이다’ 전경. /현대화랑
무제, 1977, Oil on wooden panel, 26x15cm. /현대화랑
 
‘꽃의 화가’ 김종학의 인물화를 모아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김종학 개인전 ‘사람이 꽃이다’가 4월 7일까지 현대화랑에서 열린다. ‘설악산의 화가’, ‘꽃을 그리는 화가’로 알려진 김종학은 풍경뿐만 아니라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쉬지 않고 인물을 그려왔다. 작가의 지난 60여 년의 화업 중 그가 그린 ‘인물’만을 모아 특별히 조명하는 전시로, 공개되는 143점의 작품 대부분은 관객과 최초로 마주한다.
 
3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의 첫 번째 전시장은 종이 작업과 유화 작품 등 22점으로 구성된다. 미술 활동 초기에 추상화, 판화,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작가는 인물에 대한 관심 또한 내려놓지 않고 꾸준히 가져왔다. 1977년부터 2년간 미국에서 거주하며 풍경, 정물, 인물화 등 다양한 장르를 접하면서 구체적인 형상에 대해 탐구했는데, 이와 같은 그의 모색은 그의 인물화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남자, 1978, Oil on canvas, 61x75.5cm. /현대화랑
김종학 개인전 ‘사람이 꽃이다’ 전경. /현대화랑
무제, 연도미상, Acrylic on canvas, 41 x 32 cm. /현대화랑
 
출품작 ‘남자’(1978)는 김종학이 미국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공부하던 1978년 그린 것이다. 뉴욕에서 고독한 나날을 보내던 그가 뉴욕 화단에서 접한 새로운 회화 경향에 대한 충격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당시 그가 직접 접한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Freud) 작품에 담긴 강렬한 에너지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롭게 표현하고자 한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종이에 그려진 인물 1970년대 ‘드로잉’, 1970년대 신문에 인쇄된 ‘삽화’ 등에서도 발견되는 김종학의 인물 아카이브는 그의 다양한 활동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로서 최초로 공개된다.
 
두 번째 전시장은 김종학의 종이 작업으로 꾸려진다. 김종학은 연필과 수채, 수묵 등 다양한 재료로 수많은 인물 드로잉을 시도했는데, 특히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기억한 후에 그 얼굴을 그림으로 옮기곤 했다. 이 중에서도 ‘곰보 얼굴을 한 운전기사’의 얼굴은 김종학에게 흥미로운 소재였으며 이번 전시에서도 볼 수 있다. 그가 설악산에 살면서 보고 싶었던 가족이나 친구들의 얼굴도 때로는 소재가 됐다.
 
Pandemonium, 2018, Oil on canvas, 280x800cm. /현대화랑
 
세 번째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객은 폭 8미터 대작 ‘Pandemonium’(2018)과 대면한다. 설악 야생화를 모두 한군데 모아놓은 것처럼 8미터 길이의 캔버스가 다양한 꽃으로 가득 담겨 있다. 작품을 채운 꽃들은 실제로는 크기가 아주 작은 설악산의 야생화이기 때문에 실제 자연은 김종학이 담은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 작품을 마주하며 자연의 넘치는 생명력을 직접 감각할 수 있다.
 
무제, 2015, Acrylic on wooden tray, Framed 11.8x10.2x2.6cm. /현대화랑
김종학 개인전 ‘사람이 꽃이다’ 전경. /현대화랑
 
한편, 김종학은 1937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출생하고 196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1977년 미국으로 건너가 1979년까지 뉴욕에 머물면서 서구미술의 흐름을 체험했다. 1980년에 들어서면서 ‘추상에 기초를 둔 구상’으로 설악의 사계를 그리기 시작했고 설악산에 들어가 살면서 꽃을 주로 그리기 시작했기에 ‘설악의 화가’ ‘꽃의 화가’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상업성이 강한 생존 작가에 대해 미술계가 품고 있던 편견을 극복하기도 했다. 2020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1960년부터 60여 년에 걸친 화업을 한데 보여주는 210여 점으로 구성된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를 열었다. 이 전시는 그간 규명되지 않았던 작업 형성의 경로와 김종학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가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40여 년을 살다 보니 자연의 구성 요소들을 많이 그리게 된다. 아무래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마음에 오래 남고 붓끝으로 옮겨지는 탓이다. 자연을 잘 살펴보면 그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다. 마당에서 매년 피는 꽃도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인물은 꾸준히 그리고 있다. 내게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으로 느껴진다. 사람을 보면, 가족이라 해도 제각각 생김새가 다르다.”
 
Faces, 1990s, Acrylic on paper box, 127x90cm. /현대화랑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