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2.22 17:45
유리, 나무, 청동 등 다양한 재료 활용한 공예 작품 전시
3월 16일까지 아트조선스페이스


60여 년 전 지어진 수도원의 나무 창틀로 만들어진 유리 병풍과 1400여년이 훌쩍 넘은 경주 황룡사지 터의 초석을 본뜬 청동 벤치가 한 공간에 있다. 마치 과거의 기억을 수면 위로 건져 올린 듯 은은하게 빛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두 작품은 작가 이규홍의 병풍 시리즈, 작가 정명택의 ‘둠’이다.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 발을 딛는 순간 과거에서 빌려온 시간의 흐름이 공간을 채우며 관람객을 압도한다. 작품 대부분은 한국 전통 사물에서 영감을 받아 형상화했다. 그러나 두 작가 모두 전통을 동시대 작품으로 반영하기 위해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답한다. 그저 의도하지 않아도 작가의 자연스러운 정체성이 작품에 묻어날 뿐.
이규홍·정명택 2인전 ‘원형(原型)의 은유(Archetypes: Not a Thing)’이 22일 서울 중구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개막했다. 앞서 언급한 병풍 시리즈와 ‘둠’ 말고도 두 작가가 선보이는 경이로운 공예 작품 20여 점이 전시된다. 빛을 머금고 아름답게 발산하는 유리를 다루는 이규홍과 거칠면서도 깊이감을 품은 나무, 금속, 석재를 다루는 정명택이 한 공간에서 함께 어우러지며 시너지를 펼쳐 보인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20대 남성 관람객은 “전시장의 개방감 있는 통유리창과 공간을 차지한 대형 작품들이 조화롭게 어울린다. 또, 비슷한 듯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어 뜻깊다”라고 감상을 밝혔다.


이규홍은 빛과 유리를 이용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기억과 감정에 대해 탐구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경험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발산하는 순간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빛을 현상학적으로 풀어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작가에게 빛이란 과거에 대한 상징이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의식과 기억은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신작에 사용된 병풍처럼 과거의 물건을 통해 그 안에 깃든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유리 소재를 활용해 이야기에 빛을 담아 지금 이 순간 선명하게 재현한다. 한편 작가는 2023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에 파이널리스트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현재는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래미네이트 코팅된 유리판 위 빛을 반사하는 유리 조각의 호응으로 잔잔한 에너지를 일으키는 작품 ‘빛의 숨결’을 비롯해 최초로 공개하는 작가의 신작 병풍 시리즈도 선보인다. 오래된 건물에서 쓰이던 나무 창틀에 비정형적인 유리 조각을 붙여 작가가 느꼈던 환상적인 체험의 순간을 선사한다. 작가는 빛이 잘 드는 통유리창을 배경으로 작품을 배치해 빛을 머금고 발산하는 광경을 보며 저마다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관람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정명택은 ’무위(無爲)’, ‘무심(無心)’, ‘무형(無形)’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한국 전통의 정체성과 고유의 미감을 반영한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담백함과 꾸밈없는 무심함으로 사물 안에 내재된 충만한 정신성을 내비친다. 이는 돌, 나무, 브론즈 등의 재료를 다루는 방식으로도 알 수 있다. 물질 본유의 성질을 인위적으로 숨기지 않고 그대로 표출하면서 동시에 재료 천연의 개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통 건축공법을 재해석한 ‘덤벙주초’, 실제 쓰이던 마루청을 소재로 삼은 ‘마루’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한편 작가는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에 파이널리스트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현재는 영남대학교 디자인미술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경주 구황동 황룡사지의 초석에서 영감받은 ‘둠’은 신라시대 최전성기에 있던 웅장한 건축물은 사라지고 황량한 터만 남은 벌판에서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됐다. 1400여 년이 훨씬 지난 세월을 견디고 버텨온 돌의 생명력을 청동으로 새롭게 빚어냈다. 또한 작가는 생생한 현장감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실제 황룡사지 터의 석물을 촬영한 사진 작품을 전시장 벽면에 내걸었다. ‘둠’과 실제 석물을 함께 보는 것도 또 하나의 감상 요소다. 3월 16일까지. 무료. 화~토 10:00~18:00. (02)736-7833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