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2.20 15:32
“한국 미술과 세계 미술 연결하는 장(場)으로 거듭날 것”
개관 기념해 기획전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In Dialog: 곽인식’
다음 주자는 ‘아그네스 마틴’



강릉의 새로운 공공 미술관으로 큰 이목을 끈 ‘솔올미술관(관장 김석모)’이 14일 드디어 문을 열고 19일 공식 개관식을 가졌다.
2020년부터 4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강릉시 교동7공원(강릉시 원대로 45)에 터를 잡은 미술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3221.76제곱미터(974.58평) 규모다. 건물은 마이어 파트너스(Meier Partners)의 건축 작품으로, 현대건축의 거장인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건축 디자인과 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연의 빛을 활용한 흰색의 독특한 건물 건축가로 알려진 리처드 마이어는 건축계 노벨상으로 일컫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수상자이자 애틀랜타 하이 미술관(1983), 프랑크푸르트 응용미술관(1985),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1995), 로스앤젤레스 게티 센터(1997) 등을 설계한 바 있다.
미술관은 미술 본연의 미적 감각이 발현되며 미술, 자연, 사람이 어우러지는 개방된 공간을 지향한다. 미술로 세계와 소통하고자 하는 미술관의 비전이 내부와 외부의 상호작용을 강조한 건축으로 조화롭게 시각화됐다. 진입로를 시작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면 해발 62미터 높이에 백색의 미술관이 서서히 드러나도록 설계됐는데, 미술관 주변으로 소나무가 우거진 공원이 조성돼 미술을 즐김과 동시에 자연을 거닐며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와 쉼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미니멀한 백색 마감과 절제된 프레임으로 구성돼 자연광이 전시실을 자연스럽게 채우도록 설계됐다. 관람자의 동선은 주변의 공원을 차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밖을 향하게 디자인된 외향적 공간인 반면, 전시공간은 작품 전시의 독립적 내밀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한 내부 지향적으로 구성된 내향적 공간으로 꾸며진다.
아울러, 한국의 유교적 예술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형태와 재료, 구성의 단순함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가 표현됐다. 한국의 건축적 전통을 살리고자 중앙에 마당을 조성하고 세 개의 파빌리온이 감싸도록 만든 것. 웅장한 볼륨감을 자랑하는 캔틸레버(Cantilever)의 북쪽 윙(Wing)에는 두 개의 메인 전시실이 있으며, 명료한 형태의 큐브에는 천장고 7.5미터의 명상적 성격을 보여주는 전시실과 사무공간이, 그리고 주 출입구가 있는 투명한 파빌리온에는 로비와 카페가 위치한다.
향후 미술관은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을 연결해 우리미술의 미술사적 맥락을 조명하는 미술관을 표방하며, 현대미술사 거장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역사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고자 한다. 나아가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의 미학적 연결성을 찾아내어 우리 미술의 미술사적 가치를 세계미술계에 알리는 것을 비전으로 삼는다.


이에 미술관은 개관전으로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을 4월 14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를 한국 미술관 최초로 소개하는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캔버스를 찢은 폰타나의 작품은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대중의 기억에 깊이 각인돼 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폰타나의 공간주의를 본질적으로 보여주는 네온 공간설치 작업 6점 등을 포함해 소개한다. 전시실1에는 1947년 폰타나의 ‘공간주의 선언문’ 발표 이후 제작된 대표작 21점이 내걸린다. 공간주의를 대표하는 회화 연작 ‘베기(Tagli)’, 캔버스에 구멍을 뚫은 연작 ‘뚫기(Buchi)’, 그리고 돌과 비슷한 형태의 금속을 베거나 뚫어 ‘자연(Natura)’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조각 연작을 한데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공간 환경 연작 6점은 전시실2와 로비에 설치된다. 각 작품의 원본이 전시된 1940~1960년대 당시 공간과 네온 설치를 그대로 재현했다. 관객은 물질에서 나아가 빛과 공간으로 확장된 폰타나의 공간 환경 안으로 들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김석모 솔올미술관장은 “미술관 전시로는 처음 한국에 소개되는 폰타나 작품은 1940년대 후반 작가가 제안한 혁신적인 공간주의 미술의 미술사적 맥락을 펼쳐 보이며,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동시대 미술에 의미 있는 미학적 물음을 던진다”라고 설명했다. 전시를 위해 협력한 이탈리아 루치오 폰타나 재단 측은 “한국 미술관에서 처음 개최하는 이번 폰타나 전시는 20세기 초에 태어난 혁명적인 예술가의 지속적 영향력을 확인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미술관은 이번 폰타나 전시와 함께 세계의 미술과 한국미술을 연결하고자 하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전시 프로젝트로서, ‘In Dialog: 곽인식’을 함께 개최한다. ‘In Dialog’는 세계 현대미술의 주요 맥락을 조명하는 솔올미술관의 기획전시와 함께 미학적 담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In Dialog’의 첫 주인공으로 일본에서 활동했던 한국인 미술가 곽인식의 작품이 소개된다.
1919년 한국에서 태어난 곽인식은 193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을 전공했고, 서구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경험했다. 그는 초현실주의, 앵포르멜, 폰타나의 공간주의 등 1950년대 중반 이후 서구 미술의 주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탐구했으며, 동시에 자신의 고유한 미술언어를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감행했다. 1960년대 초 재료의 물질성에 집중한 곽인식은 화면에 변형을 가하거나 돌이나 유리, 철판 등 일상적인 재료를 사용해 작품을 창작했다.
폰타나와 곽인식 두 미술가 사이에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곽인식의 몇몇 작품은 루치오 폰타나의 공간주의 작업과 미학적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폰타나가 평면성을 벗어나 시공간으로 작품을 확장하고자 캔버스를 찢었다면, 곽인식은 물질성의 탐구에 집중하며 철 구슬로 유리판을 깨뜨리거나 동판을 찢고 다시 봉합했다. 그들 작품의 방법론적 유사성은 충분히 비교해볼 만한 단서가 된다.
그러나 두 작가의 작업 세계는 전통과 물질성이라는 주제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폰타나는 물리적으로 유한한 예술의 한계를 뛰어넘어 공간과 빛, 경험 자체로 작품을 확장시킨 반면, 곽인식은 ‘사물의 말을 듣는다’라는 작가의 표현처럼 재료 자체에 수행적 행위를 가하며 고유한 감각으로 물성을 깊이 탐구했다는 측면에서 구별되는 것이 이채롭다.

한편, 미술관은 다음 기획전으로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의 국내 최초 미술관 규모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전 테이트모던 미술관장이자 현재 이화여대 초빙석좌교수인 프란시스 모리스(Frances Morris)를 객원 큐레이터로 초청해 기획되는 이 전시는 그리드로 표현된 작가의 절제된 미감과 내적 성찰을 보여주며, 즉흥적 제스처가 주를 이루던 당시 추상미술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작가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조망한다. 관람료 1만원.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