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고 또 넘으면 결국은 아름답게 뒤엉킨다

  • 김현 기자

입력 : 2024.02.08 16:42

경계 넘나들며 제시하는 새로운 가능성
김홍석 개인전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
3월 3일까지 소격동 국제갤러리 K2, K3

실재 악당, 2024, resin, 61x27x20cm. /국제갤러리
하이힐 한 켤레, 2012, bronze, cement, 30x31x17cm. /국제갤러리
내 발밑의 무게, 2018, bronze, 76.5x147cm. /국제갤러리
 
꼭 그런 사람이 있다. 수업 시간이 끝날 무렵 선생님께 질문하고, 모두가 ‘예’라고 할 때 당당히 ‘아니오’라고 말하며, 답안지 바깥에서 답을 찾아내는 사람. 김홍석이 그렇다.
 
영화 ‘조커’ 속 악당의 가면을 쓴 고양이, 레진으로 제작해 가벼운 바위, 캔버스 위에 그린 사군자, 하이힐 높이의 슬리퍼… 모두 김홍석의 작품이다. 작가는 지난 20여 년간 다양한 형식과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회, 문화, 정치, 예술에서 나타나는 서구의 근대성과, 이에 대항하는 비서구권의 저항 간에 발생하는 애매모호한 인식의 질서를 비판해 왔다.
 
얼핏 보면 전시장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상태다. 실재와 허구, 정상과 비정상, 옳고 그름의 경계가 뒤엉킨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면, 전시장의 작품은 모두 기존의 관념을 전복하며 뒤섞인 상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이는 작가가 설정한 일종의 질서인 셈이다.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 전시 전경. /국제갤러리
분수의 노동, 2024, resin, 258x50x40cm. /김현 기자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김홍석 작가. 작품은 벽에 고정된 형태로 내걸리지 않고 와이어에 연결돼 허공에 떠 있는 형상이다. /김현 기자
 
“뒤엉킨 세계는 이원론적 사유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실천의 시작이다. 아마도 현대성은 곧 모든 것의 뒤엉킴일 것이다.”
 
뒤엉킴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홍석의 개인전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가 3월 3일까지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작가는 통상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관념, 인식, 형태를 전복시키고 뒤섞어 새로움을 향한 가능성을 내비친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발견되는 미술 속 자본과 아방가르드의 충돌, 서구의 모더니즘과 비서구권 잡종성의 대립 같은 이원적 개념에서 뒤엉킨 감각을 발견해 대안으로 제시한다.
 
국제갤러리 K2 1층 공간은 대중이 흔히 학습해 온 당연한 정보가 통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작품을 선보인다. 앞서 언급한 고양이, 바위 작품 외에도 픽토그램처럼 단순화한 형태와 색감으로 표현한 불꽃 조각 연작이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허물고 있고, 바닥에 놓인 카펫 조각은 물질성을 해체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는 오브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과는 상반된 성질을 가진 재료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서구권에서는 본질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비서구권은 오리지널보다는 모방과 재구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점에 주목해 보편적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표현한다.
 
Composition I, 2024, acrylic and heavy gel on canvas, 110x100cm. /국제갤러리
Tension II(Homage to Qi Baishi), 2024, acrylic and modeling paste on canvas 110x100cm. /국제갤러리
 
K2 2층에는 사군자 페인팅을 필두로 연꽃, 대나무, 잡목을 그린 회화 작품이 내걸린다. 눈여겨볼 특징은 한지가 아닌 캔버스에 작품을 그렸다는 점이다. 동서양의 경계를 한계 없이 돌파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시장에는 미국 블루스와 컨트리 장르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작가가 살아오며 혼란을 느낀 순간에 위로를 건네준 음악이다. 그러나 동양 정통 회화인 사군자가 내걸린 전시장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 또한 작가가 서양 음악과 동양 회화를 의도적으로 혼합해 ‘뒤섞음’의 상태를 완성한 것이다. 작가는 기차역, 공항, 쇼핑몰 같은 공적 공간의 음악처럼 전시장 역시 특수한 곳이 아닌 공공적 공간임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한다.
 
믿음의 오류(운석), 2024, resin and stainless steel, 150x180x160cm. /국제갤러리
믿음의 오류(운석), 2024, resin and stainless steel, 150x180x160cm. /국제갤러리
 
K3에는 다른 광경이 연출된다. K2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오가며 뒤섞인 새로움을 보여줬다면, K3에서는 작가가 정의한 ‘정상’에 조금 더 가까운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장 중앙에는 천장을 뚫고 바닥에 떨어진 듯한 거대한 운석 덩어리가 위치하는데, 미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깨진 모습이다. 갈라진 형태 사이로는 불문율적으로 합의한 별의 기호를 띤 두 개의 물체가 관찰된다. 작가는 한때는 별이었으나 현재는 하나의 돌에 지나지 않는 본체와, 그 내부에 보이는 별의 표상의 조화를 통해 실재적 존재와 해석적 존재의 개념을 뒤엉키게 만든다.
 
현대인은 언제나 세상의 수많은 관념에 휘감겨 있다. 또한 사회로부터 요구받는 역할과 실존적인 자신의 지향점이 다른 경우가 많다. 김홍석의 이번 전시는 어쩌면 그들에게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념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새로운 자신의 삶을 완성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의 뒤엉킴을 통해 우리의 인식 체계를 바꿔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쳤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