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을 쌓아 만든 여러 겹의 레이어… ‘의식의 길: 표현의 흔적’展

  • 김현 기자

입력 : 2024.01.18 17:26

이연성·정석우 2인전
인간 내면과 자연환경 표현
27일까지 성수동 디 언타이틀드 보이드

‘의식의 길: 표현의 흔적’ 전시 전경. /김현 기자
이연성, 소년 01, 2023, oil on Canvas, 40x53cm. /디 언타이틀드 보이드
정석우, 능선풍경 #30, 2023, oil on canvas, 45.5x45.5cm. /디 언타이틀드 보이드
 
어떤 사람들은 겨울을 무채색에 비유하곤 한다. 흰 눈이 쌓이고, 밤이 긴 탓에 일상 속에서 선명한 색을 만날 기회가 적어지기 때문. 그래서 겨울이면 저마다의 색을 가진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 갤러리를 찾는 관람객도 있다.
 
도시 속 회색 겨울 풍경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연성(41)의 작업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뛰어나게 아름다운 경치에 이르는 비인간적인 환경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랜 시간 동안 자연을 조작하고 제한하는 건축 일을 하며 인간과 자연이 부딪힐 때마다 배제돼 버리고 마는 자연을 보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작가는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한 존재론적 두려움을 신비로운 색감의 추상적인 회화로 표현한다. 때문에 작품 속에서는 묽은 색감이 여러 층위를 이루고 있으며 흘러내리기까지 하는 성질을 보여준다.
 
인간은 외부의 환경이 흐릿해질수록 내면에 집중하게 된다. 정석우(43)는 의식의 흐름을 구조화하는 데 집중하며, 이를 제한적인 색채 조합의 추상회화로 표상한다. 또한, 평면 회화에만 국한하지 않고 외부로의 확장을 통해 작품이 외부 환경과 유기적으로 결합하게 한다. 이를 통해 작품을 보는 사람은 다각도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되며, 단순히 평면 회화가 아닌 공간을 이루는 하나의 새로운 작품으로 재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연성, 물에 잠긴 나무 01, 02, 2023, oil and mixed medium on canvas, 53x40cm. /김현 기자
정석우, 능선풍경 #167, 2023, oil on oilpaper, 45x42cm. /디 언타이틀드 보이드
 
이연성과 정석우의 2인전 ‘의식의 길: 표현의 흔적’이 27일까지 성수동 디 언타이틀드 보이드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마음속 한켠에 자리 잡았으나 말로 형용할 수 없었던 공허한 부분, 또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보이지 않아 답답했던 부분을 끄집어내어 그려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디 언타이틀드 보이드는 정립된 결론을 단순히 전시한다기보다는 새롭고 살아있는 질문을 표현하기 위한 초대장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뚝섬역 1번 출구로 나와 골목에 들어서면 카페나 개성 있는 물건을 판매하는 가게를 만나게 된다. 이후 쭉 지나쳐 걷다 보면 동시대성을 반영한 전시 ‘의식의 길: 표현의 흔적’과 크진 않지만 감각적인 디 언타이틀드 보이드 건물이 보인다.
 
‘의식의 길: 표현의 흔적’ 전시 전경. /김현 기자
정석우, Vertical, 2023, oil on canvas, 343x217cm. /김현 기자
 
1층 철문을 열자마자 어둡고 스산했던 바깥 분위기는 사라지고, 따뜻하고 서정적인 예술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특히 입구 왼쪽 벽면의 3미터가 넘는 대형 회화 작품인 정석우의 ‘Vertical’은 기대감을 증폭시켜 준다. 이후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이연성의 작품으로 시선이 옮겨진다. 갤러리 1층은 면적이 넓지는 않지만 작품이 비교적 촘촘하게 내걸려 집중을 이어갈 수 있다. 또한 두 작가의 작품을 층별로 나눠놓거나, 벽을 끼고 나눠놓지 않고 한 공간 안에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의식의 길: 표현의 흔적’ 전시 전경. /김현 기자
 
2층 전시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건물 밖으로 나가 외부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한다. 전시장과는 상반된 추운 겨울 공기를 마시면 작품으로부터 받은 정서적 영향이 다시 한번 상기된다. 2층 입구 우측에는 세로로 긴 통창이 있다. 통창으로는 1층 입구 왼편에 걸린 대형 작품 ‘Vertical’을 보인다. 통창 앞에는 정석우의 ‘Pair’가 있다. ‘Pair’는 투명한 유리 위에 물감을 올려 그려낸 작품인데, 유리 소재의 특성상 물감이 칠해지지 않은 나머지 부분은 투명하게 뒷 배경이 보인다. 관람객은 각도에 따라 ‘Vertical’과 ‘Pair’를 겹쳐보며 투명하고 입체적인 정석우의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높낮이를 이용한 공간을 통해 시점의 변화를 좇으며 작품 관람이 가능하다. 또한, 건물 곳곳의 큼지막한 통창 덕분에 외부를 보며 시점을 환기할 수도 있고 시각적으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