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는 왜 검은 바지에 흰 셔츠를 입었을까… '슈테판 발켄홀'展

  • 김현 기자

입력 : 2024.01.08 18:26

인간 본연의 존재 탐구하는 12점의 조각 작품
2월 3일까지 청담동 쾨닉 서울

슈테판 발켄홀 개인전 ‘Stephan Balkenhol’ 전경. /김현 기자
Man, Black Trousers, White Shirt, 2019, bronze, color coated, 199x74x43cm. /쾨닉 서울
FRAU IN BLAUEM HEMD(2023) 디테일컷. 거칠게 깎아낸 나무 표면과 눈빛이 돋보인다. /김현 기자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무표정의 여러 인물이 관람객을 맞는다. 흰 셔츠에 검은색 바지, 장신구는 없다. 저마다 특별한 자세를 취하지도 않고 그저 단정하게 서서 허공을 바라볼 뿐이다. 슈테판 발켄홀(Stephan Balkenhol·67)의 작품이다.
 
Man in Black Suit, 2019, wawa wood, color coated, 171x25x27cm. /쾨닉 서울
Man on Pedestal, 2019, wood, color coated, 156x63x28cm. /쾨닉 서울
 
발켄홀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나의 모든 조각상은 기쁘거나 슬픈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점이 감성적 호기심을 자극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한다. 이렇듯 작가의 작품에서는 표정이 드러나지 않지만, 결코 차갑거나 무관심한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각 작품을 특정 지을만한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지극히 평범한 ‘우리’를 묘사했기 때문이다.
 
작품이 검은 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현대인의 가장 흔한 복장이기 때문. 발켄홀은 비슷비슷한 인물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또한 스케치하듯 빠르게 작업하는 작가 고유의 방식은 현대의 속도를 따라가며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담아낸다.
 
Woman in Red Shirt(Landscape)(2019). 각도에 따라 작품의 시선이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쾨닉 서울
 
또 눈여겨볼 점은 주재료인 목재의 질감이다. 발켄홀은 백양나무, 벽오동나무, 삼나무 등 부드러운 나무를 거칠게 깎은 뒤 무광 채색으로 마무리한다. 때문에 작업 과정에서 뜯긴 나무 파편의 모습이나 그림자가 만든 입체적인 음영을 찾아볼 수 있다. 좌대와 작품이 분리되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미니멀리즘의 양식을 따르면서 좌대까지 일체형으로 제작해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경험을 느끼게 한다.
 
발켄홀은 같은 형상의 작품이라도 다른 비율로 표현하며 공간적, 구조적 변주를 보여준다. 또한 실제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작품이라도 어딘가 어색한 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실제보다 크게 표현된 머리와 손발 때문이다. 단순히 사람을 재현한 것이 아닌 작가만의 조형적 규칙을 가지고 작품을 구성했음을 알 수 있다.
 
발켄홀의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품 옆에 나란히 서보거나, 허공을 바라보는 인물과 눈을 맞춰보는 경험을 유도한다. 이는 작품이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고도 다른 묘한 매력을 가지기 때문인데, 관람객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작품을 통해 예술과 자신의 존재를 구분 짓는 것이 무엇인지 비교해 보게 된다. 작품의 손끝, 눈빛, 키와 비율 같은 부분을 살펴보며 결국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셈.
 
슈테판 발켄홀 개인전 ‘Stephan Balkenhol’ 전경. /김현 기자
Man in Urban Landscape, 2017, wawa wood, color coated, 200x200cm. /쾨닉 서울
슈테판 발켄홀 개인전 ‘Stephan Balkenhol’ 전경. /쾨닉 서울
 
발켄홀의 국내 첫 개인전이 2월 3일까지 청담동 쾨닉 서울(KÖNIG SEOUL)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나무판으로 제작된 부조 작품을 비롯해,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검은 바지와 흰 셔츠를 입은 다수의 남자 조각상이 전시된다.
 
발켄홀은 비스바덴헤센주립박물관(the Museum Wiesbaden), 렘부르크박물관(Lehmbruck Museum), 말라가현대미술관(the Centro de arte contemporáneo de Málaga), 모스크바현대미술관(the Moscow Museum of Modern Art) 등 여러 기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2022년에 이스라엘 아메리칸프렌즈박물관의 명예 작가로, 2016년에는 러시아 예술원의 명예 회원으로 선정됐으며, 2014년에는 프랑스 문화 예술 공로훈장을 수여했다. 작가의 작품은 베를린국립박물관(the Staatlitche Museen du Berlin), 함부르크미술관(the Kunsthalle Hamburg), 아프리카박물관(the Museum Africa), 오사카국립국제미술관(the National Museum of Art), 베니스페기구겐하임컬렉션(the Peggy Guggenheim Collection) 등 많은 공공기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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