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화 개인전 ‘왜곡된 확장’

  • 김현 기자

입력 : 2023.12.15 09:48

●전시명: 이승화 개인전 ‘왜곡된 확장’
●기간: 2023. 12. 19 ─ 12. 24
●장소: 갤러리 도스(서울시 종로구 삼청로7길 37)
 
Extensity D1, 2023, porcelain, glaze, concave lens, 35x35x38(h)cm. /갤러리 도스
 
세계가 다양성으로 인해 분화를 거듭할수록 공간의 개념은 재료와 표현이 만들어내는 공간에서 나아가 표현 주체와 객체의 인지적 판단 또는 감각의 반응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세계와 현존재 사이의 관계를 반영하는 공간의 역할은 고정된 세계에서 해방된 공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는 예술이라는 장르에 있어서 다소 협소했던 전통의 영역을 확장하고 새로운 창조와 해석을 가능케 하여 실재하는 공간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승화 작가는 도자 조형의 특수성에 기초한 장식의 표현을 극대화하여 감각을 촉발시키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작가 주체의 지각 과정과 표현에 대한 탐구부터 관객의 반응까지의 상호작용을 작품이라는 공간 안에서 공존시키고자 한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실내에서 자연을 향유하거나 번영을 염원하는 수단으로 도자 표면에 창호를 만들어 그 속에 상징적인 문양을 시문하였다. 창호는 안과 밖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로 외부의 빛을 받아들이고 공기를 순환시킨다. 작가는 이러한 기능을 활용하여 작품에 접목시켜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예술적 가치를 돋보이게 한다. 작품은 장인정신이 깃들어져 있는 전통 도자의 형태에 현대적인 감각의 장식과 색채감으로 그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가 펼쳐진다. 나아가 기존의 공간을 확장된 세계로 안내하여 주술적,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 삶의 목적과 욕망을 발견해 내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상상하다보면 저마다의 관점에 따라 새로운 해석과 의미가 만들어진다.
 
말랑한 점토가 끊임없는 물성의 변화를 겪으며 오랜 시간 구워져 마침내 단단해지듯 인간 또한 시간이 흐르고 계속해서 변모하며 일련의 과정을 지나야만 조금씩 뚜렷해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작가는 반응하고 감각하며 변형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유연하게 흐르는 도자기의 곡선에서 삶과 생명의 시간성이 느껴져 작품 구석구석 시선을 옮기다보면 깊은 사유에 빠지게 만든다. 그리고 여러 개의 오목렌즈를 통해 보이는 도자 안의 풍요와 다산 등을 상징하는 포도문 장식은 정지된 공간 속에서 왜곡되어 공간 안에 가득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과 대상 자체가 지닌 에너지를 분출한다. 이렇듯 작가는 오목렌즈라는 재료의 사용을 통해 장식성을 부각할 뿐만 아니라 창호의 표현으로 공간을 감각하고 인식하는 과정 자체에 주목한다. 실재하는 공간이 지각 주체를 통해 변화되어 인식되는 모습을 도자기에 옮김으로써 보이지 않는 본질과 실체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Extensity I2, 2023, porcelain, glaze, hanji, 57x57x12(d)cm. /갤러리 도스
Extensity D2, 2023, porcelain, glaze, concave lens, 35x35x37(h)cm. /갤러리 도스
Extensity I1, 2023, porcelain, glaze, hanji, 45x45x123(h)cm. /갤러리 도스
 
이번 전시는 신비하고 환상적인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오목렌즈를 통해 보이는 반복되는 문양들의 이색적인 분위기가 낯설지만 시각적인 유희로 인해 상상력을 자극하고 몰입감을 높인다. 오목렌즈를 통한 이미지의 왜곡으로 하여금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 저마다의 지각을 통해 공간을 확장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지각 주체에 의해 고정된 공간은 단순히 인식에 그치지 않고 주체인 자신과 마주함으로써 시시각각 변모하는 유동성을 지닌 공간이 되어 또 다른 세계로 인식된다. 깨끗하고 맑은 미색 또는 백색의 도자기와 그 안으로 보이는 포도문의 색채는 감각적인 대비를 이루며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남기고 현실을 초월한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켜 관객과 소통한다. 포도문의 상징을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감상하며 현재 삶의 모습과 그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욕망을 드러내 존재의 본질을 깨닫길 바란다.
 
작가는 공간성을 도자의 전통적 형태와 그에 맞는 다양한 장식을 통해 표출한다. 공간성이란 공간에 대한 관념이나 공간으로서의 특성으로 작가는 이를 전통도자 장식이 지녔던 공간의 한계를 확장 시키고 이를 비틀어 보는 시각을 표현한다. 작가가 추구하는 공간성은 쉽고 편리하게 시선을 둘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해석이 아닌 왜곡되고 희미하게 시선이 닿는 공간과 해석 그로 인한 시각적 유희를 남긴다. 전시 ‘왜곡된 확장’ 에서는 작가가 오목렌즈로 바라본 공간성의 왜곡과 그로 인한 신비로운 경험, 한국의 전통창호가 가졌던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표현된 포도문은 동서양 전통 장식에 나타났던 문양으로 고대에는 서아시아에서의 생명 불사를 나타냈으며 조선 시대에는 청화, 철화를 통해 풍요와 다산, 장수의 상징으로 도자 장식으로 시문되었다. 이러한 포도문의 상징을 작가는 현대사회에 넘쳐흐르는 풍요로 재해석하였다. 특히 ‘Extensity D’ 시리즈에서 오목렌즈를 통해 본 대상은 더 많고 더 작아 보인다. 이 모습은 더 많이 가질수록 더욱 부족함을 느끼는 인간의 소유욕과 그 역설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에 맞춰 풍요에 만족 못하는 인간의 군상을 포도문 옆 등장하는 원숭이 장식으로 희화화하여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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