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12.14 18:05
‘호상근 표류기 2023: 새, 카트, 기후’
색연필로 그려낸 낯선 풍경
23일까지 대치동 오에이오에이

작가 호상근은 일상에서 포착한 낯선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종이와 색연필로 기록하는데, 이는 그가 그리기 작업을 통해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 혹은 관찰자로 살아가며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최근 호상근의 작품에서 도심의 새와 낯선 곳에 세워진 카트, 그리고 에어컨 따위가 완비돼 있지 않은 유럽 건물 특성상 기후 변화에 대처법을 찾는 사람들의 행태 등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작가가 독일에서 포착한 광경이다. 이 소재는 모두 본래의 자리에서 벗어난 존재로서, 작가는 나고 자란 곳을 떠나 낯선 문화에 적응하며 표류하고 있는 자신을 투영하고자 한다.


호상근이 일상에서 몇 걸음 떨어져 포착한 세계는 흔하지만 낯설고, 사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다. 작가는 인간에 대한 낙관적이고 호기심 어린 시선, 당연해 보여도 결코 가볍지 않은 것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작업 곳곳에 녹여낸다. 특정한 세계를 제시하기보다는 그가 건져 올린 ‘단서’를 펼쳐놓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각기 다른 삶의 여정에 오르도록 돕는다.


호상근 개인전 ‘호상근 표류기 2023: 새, 카트, 기후’가 23일까지 서울 대치동 오에이오에이(oaoa)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5년 만에 마련되는 작가의 개인전이다. 최초 시도하는 A0(전지) 사이즈의 대형 색연필 작업 4점을 포함해 정교하고 세밀한 묘사로 그려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는 독일에서의 삶을 ‘표류’로 상정하고 낯선 땅에서 경험한 이질적인 순간을 이미지로 건져 올린 후, 이를 삶의 목적지를 향한 단서처럼 여긴다. 그동안의 국내 작업이 한국의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해학과 공감을 기록하는 것에 의미를 뒀다면, 2019년부터 해외에 거주하며 완성한 이번 작품은 한국에서보다 단순해진 생활 패턴으로 작업에 더욱 몰두할 수 있게 돼 디테일과 밀도가 한층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