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외벽도 전시장… 정세인 ‘나는 나의 힘을 느낀다’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3.12.05 17:51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미술관 길목 프로젝트’
건물 외벽에 대형 텍스트 작업 선봬… 유휴공간 활용성 보여줘

정세인 ‘나는 나의 힘을 느낀다(I Feel My Power)’(2023) 설치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 후면 외벽에 한눈에 읽기 힘든 글귀가 쓰여 있다. 정세인의 대형 텍스트 설치 작업 ‘나는 나의 힘을 느낀다(I Feel My Power)’(2023)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외벽에 내걸린 폭 23미터에 이르는 이 대작은 작가가 소설 ‘데미안’에서 영감을 받아 ‘나의 이야기는 혼돈과 광기 꿈이 뒤섞여 있다’라는 문장을 활용해 자신의 삶과 철학에 미치는 영향을 관객과 나누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성희)은 ‘미술관 길목 프로젝트: 정세인’을 2024년 10월 3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미술품수장센터 외벽과 길목에 설치해 주차장에 도착하는 관람객들의 첫 시선을 사로잡는다. 청주관 주차장 입구부터 본관 로비까지의 유휴공간을 다양한 실험적 예술 작품을 소개하는 곳으로 탈바꿈해, 관람객의 발길을 미술관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첫 작가로 선정된 정세인은 건축 자재인 타공판을 사용한 입체적인 평면 작업에서 강렬한 색감과 감각적인 타이포그래피 텍스트를 사용해 다층적 의미를 지닌 이미지를 만든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타이포 설치 작업과 타이포를 활용한 6개의 영상 작업이 이어져 메들리 형식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내보인다.
 
정세인 ‘나는 나의 힘을 느낀다(I Feel My Power)’(2023) 설치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정세인 ‘나는 나의 힘을 느낀다(I Feel My Power)’(2023) 설치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건물 외벽에 설치된 ‘나는 나의 힘을 느낀다’에서 차가운 금속 물질인 알루미늄 타공 패널의 무수한 구멍은 마치 각각의 단어를 내뱉는 작가의 숨구멍처럼 보이는 듯하다. 숨구멍 아래 즉 타공 패널 구멍 뒤에 가려진, 붉게 번진 텍스트는 작가의 환상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내면의 정체성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극적인 감정의 전개를 정세인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보여준다.
 
이 작품 속 텍스트는 ‘데미안’에 나오는 ‘나의 이야기는 혼돈과 광기 꿈이 뒤섞여 있다’라는 구절과 작가가 ‘오늘 나는 죽기 위해 총을 그렸다’(2012)를 위해 썼던 프롤로그의 한 문장  ‘오늘 나는 바다가 보고 싶어 수평선을 그렸다’를 국문과 영문으로 타공 판넬에 겹쳐 쓴 것이다. 또한, 어린 시절 미술교육을 받으며 바다를 그리는 데 익숙했던 작가는 ‘오늘 나는 바다가 보고 싶어 수평선을 그렸다’라는 개인적 메시지를 통해 문장을 완성했다. 이 두 문장 위에 ‘Trust your own power and don‵t stop believing’은 자신의 내재된 힘을 믿는 작가가 도출한 중요한 메시지다. 이것은 바로 자신 안에 있는 고유한 힘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살아갈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어서 미술관 입구 진입로 안쪽 ‘ㄱ’자 모양의 공간은 4개의 스크린과 함께 미디어 설치 존으로 꾸며진다. 미디어 설치 존에서 전시되는 6점의 미디어 신작은 무빙 이미지의 영상 작업으로 관람객은 길목 공간을 지나가면서 혹은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이러한 전시 방식은 관람객이 6편의 시각화 된 텍스트의 메시지를 각자의 호흡으로 내밀하게 읽어가길 바라는 작가의 숨은 의도를 보여준다.
 
텍스트 작업은 문자를 매개로 하는 특성상 시지각을 통해 의미를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정세인의 작업에서는 영문과 한글이 교차하고 각 언어의 문장이 겹치면서 쉽게 읽을 수 없는 이미지가 된다. 이는 타성에 빠진 읽기가 아닌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어려운 읽기가 요구되는 작가의 고유한 정체성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