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11.30 12:08
12월 29일까지 서정아트 강남


전시장 공간이 하나의 큰 캐비닛으로 변신한다. 작가들은 그 ‘캐비닛’ 안에 무엇을 넣었을까. 김덕한, 나난, 박지은, 사이먼 고, 송민규, 신봉철, 안다빈, 이미주, 이병호, 이시산, 재진, 전아현, 최민혜, 피정원, 홍성준 작가 15인이 참여하는 ‘디어 캐비닛(DEAR CABINET)’전(展)이 12월 29일까지 서정아트 강남에서 열린다.
인류는 진귀한 물건들을 수집하고 한 공간에 진열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만난 세상을 만끽하고 그로부터 스스로 취향과 정체성을 확립하곤 했다. 캐비닛은 단순히 수집의 결과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점차 예술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지적(知的) 작업이 끊임없이 교호하는 공간으로서 기능하며 오늘날 미술관과 박물관의 전신(前身)인 셈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점에 착안해 기획됐다.

전시의 동선은 크게 두 갈래로 구분되는데, 첫째로 전시장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작가 15인의 작품과 그 옆에 마치 은밀한 비밀을 감춘 것처럼 놓여있는 개별 캐비닛을 만날 수 있다. 작은 캐비닛 안에는 작업에 임하는 태도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유한성, 물성, 존재성 등 제각기 소중히 여기는 개념에 대한 차근한 고민은 작품과 하나가 돼 호흡한다.
둘째는 전시장 초입에서 만나는 3면으로 둘러싸인 디귿 형태의 커다란 캐비닛 공간이다. 개별 캐비닛에 개개인의 사유의 한 순간이 박제되듯 담겼다면, 큰 캐비닛 공간에는 사유로 다다르는 무수한 시간과 지난한 과정이 담겨 있다. 과정은 그야말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재 속으로 흩어지고 부스러기만 남긴다. 이 부스러기가 버려질 때 비로소 작업이 존재하게 된다. 이 캐비닛 공간은 예술적 상상력이 확장되고 창작이 이뤄지고 다시 영점으로 돌아가는 고리를 붙잡아 부재와 존재 사이의 여백을 메운다.
이번 전시는 하나의 작품이 누군가의 캐비닛에 진열되기까지 거치는 시간과 내밀함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