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10.27 18:01
입체, 설치, 미디어아트 등 4개국 15명의 작가 참여
11월 30일까지 나주시 일대서 펼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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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으슥한 폐공장 안에 들어서면 공중을 부유하는 듯 오묘한 감상의 천이 관객을 맞이한다. 패브릭 위에 새겨진 산수화의 고즈넉한 풍경이 마치 불빛과도 같이 어두컴컴한 공간을 가득 메우며 밝히는 듯하다. 일상생활에서 버려진 폐품을 소재로 삼아 새로운 형태의 이미지를 빚어내는 작업에 몰두해 온 민성홍의 설치 신작 ‘Drift_비정형’(2022~2023)이다.
작품이 내걸린 이곳 폐공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수용 소고기 통조림을 생산하던 화남산업으로, 하루에 많게는 소 400마리를 도축했다는 어두운 역사를 지니기도 했다. 작가의 이번 작품은 이러한 배경에서 기인했다. 민성홍은 폐품으로 버려진 산수화를 활용해 이상향의 풍경을 보여주며 지난 시간을 치유하듯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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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 곳곳이 동시대 미술품으로 채워진다.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 2023’가 유서 깊은 고장인 나주의 역사적,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공공장소 열 곳에서 펼쳐진다. 그 ‘열 개’의 장소는 조선시대에서 시작해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1970년대에 이르는 오랜 역사를 품은 곳들로, ▲구 나주역사 ▲구 화남산업 ▲나주정미소 ▲금성관 ▲나주 향교 ▲서성문 ▲나주 목사 내아 금학헌 ▲나빌레라문화센터 ▲영산포 등대 ▲영산나루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작가 11인(강용면, 김계현, 김경민, 김병호, 남지형, 민성홍, 박일정, 엄아롱, 이상용, 이이남, 조은필)과 해외작가 4인(나오코 토사(일본), 이레네 안톤(독일), 하이 뚜(베트남), 응우옌 코이(베트남))이 참여한다. 이들 작가는 각각의 역사적인 장소에 의미적 맥락이 통하는 미술품을 설치해, 각 작품들이 장소성에 공감하며 탄성을 울리듯 그 공간과 어우러지게 한다. 미술제의 주제가 ‘흐름, 열 개의 탄성’인 이유다. 생명, 생태, 역사, 시간성과 관련된 입체, 설치, 미디어아트 등 4개국 15명의 작가들이 창작한 다양한 장르의 동시대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 작품들이 설치된 역사적인 장소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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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곰탕거리 부근에 위치한 금성관 마당에 새파란 볼링공 수백 개가 흩어져 있어 눈길을 끈다. 강용면의 ‘온고지신’(2022)이다. 한국적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둥근 밥그릇과 풍요롭게 넘치는 밥 덩이들을 형상화해 선보인다.
한국인에게 밥이란 끼니를 채우는 가장 주요한 음식 중 하나다. 또한 곱게 떠 놓은 하얀 밥은 어머니가 기원하는 가족의 안녕을 의미하기도 한다. 강용면은 본 작품을 통해 이러한 의미를 다시 되돌아본다. 특히 작품이 설치된 금성관은 본디 조선시대 나주목의 객사였으며, 나주를 방문한 사신과 관리들이 묵던 곳이다. 마당에 설치된 볼링공들과 이를 담고 있는 큰 바구니는 밥공기와 그 안에 담긴 밥을 형상화한 것으로, 나주에 온 귀한 손님들을 잘 대접하려는 마음의 이미지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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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는 역사 투어와 예술 투어를 함께 즐기도록 유도한다. 관객들은 생명, 생태, 역사, 시간성과 관련된 입체, 설치, 미디어아트 등 4개국 15명의 작가들이 창작한 다양한 장르의 동시대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 작품들이 설치된 역사적인 장소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아울러, 전시와 연계한 부대행사로, 예술감독과 큐레이터와 함께하는 ‘아트투어’가 29일 열리며, 문화예술 전문가와 함께하는 ‘학술 세미나’가 11월 11일 마련될 예정이다.
전시를 총괄한 백종옥 예술감독은 “살아 있는 것은 끊임없이 흐른다. 무엇이든 멈춰 있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영산강은 나주의 태동을 지켜봤고 나주의 역사를 관통하며 지금도 도도히 흐르고 있다. 영산강이 살아 흐르듯 나주의 역사와 문화도 살아 숨 쉰다. 나주에 산재한 과거의 유산들은 단지 옛 추억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 생동하는 문화예술의 장으로 새롭게 되살아나야 한다”라고 기획 의도에 대해 밝혔다. 이번 전시는 11월 30일까지 매일 10:30~17:30 운영된다.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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