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10.12 15:59
29일까지 강릉시립미술관 등 강릉 일대


제2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23) '서유록'이 29일까지 강릉 일대에서 펼쳐진다.
이번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은 2021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경성유록' 중 '서유록'을 중심으로 꾸려진다. 서유록은 1910년대 초 강릉 김씨 여성이 혼자만의 힘으로 대관령을 넘어 서울에 다녀온 37일간의 여정을 담은 기행문으로, 1913년의 서울 풍경을 제대로 묘사한 기록이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여성 문인의 여행기로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중요한 사료다. 이에 GIAF23은 격동의 시기에 한계를 극복하며 홀로 여행에 도전하며 개인 가치를 실현한 강릉 김씨를 페스티벌의 안내자이자 주제를 전달하는 상징적 인물로 삼아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이번 전시는 강릉 김씨의 여정과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예술을 매개로 강릉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유기적 관계를 조망하고자 강릉의 특징을 담은 공간에 마련된다.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강릉시립미술관, 국립대관령치유의숲, 동부시장 레인보우(233호), 옥천동 웨어하우스 등이 이번 페스티벌의 주요 거점으로 역할을 한다.
고등어, 로사 바바(Rosa Barba), 박선민, 아라야 라스잠리안숙(Araya Rasdjarmrearnsook), 양자주, 이우성, 카밀라 알베르티(Camilla Alberti), 티노 세갈(Tino Sehgal),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 홍순명 등 다양한 국적과 연령대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또 강릉 지역 작가의 참여를 활성화하고자 지난 3월 진행한 ‘제2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전시 작가 공모’로 선정된 송신규, 임호경 작가는 물론, 국립대관령치유의숲에서 퍼포먼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흑표범 작가도 이번 페스티벌의 참여 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중에서도 티노 세갈과 프란시스 알리스 등 국내에서는 자주 보기 어려운 세계적 작가의 참여가 눈에 띈다. 국립대관령치유의숲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티노 세갈은 런던 출신이자 베를린을 기반으로 20년간 국제적으로 활동해 온 작가다. 제51회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대표 작가로 참여하고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 명성을 지닌 티노 세갈은 특정 상황을 구축하고 현장에서 관람객이 실시간으로 경험하는 과정과 행위를 작품으로 승화해 기존의 예술 제작 방식의 관념을 깬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딧스유(This You)' 또한 기존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작가가 직접 퍼포먼스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연출할 뿐, 그가 고용한 인터프리터(해석자)가 미리 연습한 대로 상황을 구현한다. 평소 작품에 대한 자료나 이미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 그의 작품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경험할 특별한 기회다.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영상 작품을 상영하는 프란시스 알리스는 1986년 국제구호활동을 위해 멕시코로 향한 이후 현재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영상 작업 '모래 위 선(Sandlines, the Story of History)'을 선보인다. 영화감독 줄리앙 데보(Juilien Devaux)와 공동 작업해 2020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 영상은 그가 2016년부터 이라크에서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 중 하나이자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지정학적 문제를 논하는 '어린이들의 게임(Children's Game)' 시리즈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이라크 모술 지역의 작은 산간 마을에 사는 어린이들이 이 지역의 역사 속 다양한 국적과 종족의 인물을 역할극으로 재현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역사를 재해석한다. 1916년 영국과 프랑스가 비밀리에 체결한 불공정 협정인 사이크스-피코 조약, 2016년 이슬람 국가 테러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라크 역사의 한 세기를 망라하는 작품이다.

또한 국내외 작가들이 GIAF23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신작등 다양한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페스티벌 공간 중 가장 많은 작품을 전시하는 강릉시립미술관에서는 6명의 작가를 만날 수 있다. 홍순명 작가는 자연 풍경과 유적지를 겹쳐 여러 장소와 시간이 혼재하는 장면을 선사하는 신작 '서유록-홍씨 여행기'로 미술관 1층 벽면을 가득 채우고, 공모로 선정된 송신규 작가와 임호경 작가는 각각 신작 '탄소 나무'와 '볼 수 없는 것'을 선보인다.
1950년대 양곡 창고로 만들어졌다가 공간 업사이클링을 통해 이번 페스티벌 기간에 걸쳐 열린 공간으로 변신한 옥천동 웨어하우스 안쪽 공간에서는 문명과 자연, 안과 밖 등 이항적 세계의 관계에 질문을 던지는 박선민 작가가 신작 '귀와 눈: 노암'을 선보인다. 1900년대 초 일본의 수탈을 위해 생겨나 6.25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장소라는 비극적 역사를 지닌 노암터널을 주목한다. 노암터널에 수차례 방문한 작가가 터널의 구조적 특성과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을 두고 카메라 렌즈로 관찰한 작품이다.
서부시장과 더불어 강릉의 가장 오래된 시장인 동부시장에서도 다양한 작품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고등어 작가는 영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로 강릉의 옛이야기와 이곳에 살고 있는 이주 노동자를 주목한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바다 건너 먼 곳을 찾아온 이주민들의 행보를 따라가는 작업을 선보이며 그들의 언어로 된 네 가지 글귀를 동부시장 내부와 옥천동 웨어하우스 담벼락에 남긴다.
이우성 작가는 '생활과 미술'을 주제로 드로잉, 회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일상과 삶의 주변에 자리한 대상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자신의 사적인 순간이 그림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의 기억에 닿아 연결되기를 희망하는 작가는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만물상 같은 동부시장의 모습과 시장 곳곳에 남아 있는 가게 간판을 보면서 느낀 애잔함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이번 행사는 무료 관람할 수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