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던졌더니 조각이 됐다… 이강소의 '조각'이란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3.09.11 17:57

이강소 '바람이 분다: 조각에 관하여'
10월 28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

Untitled-93140. Bronze. A.P. 1-2. 50x110x60cm. 1993. /리안갤러리
 
이강소의 조각은 흙을 아무렇게나 툭툭 쌓거나 허공에 던져 만들어지는 우연적 흙덩어리와 같다. 사람을 빚어내는 재료로써 혹은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는 물질로써 여겨지는 ‘흙’을 던짐으로써 예술품을 빚어내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작가의 손을 떠나 내던져지는 흙은 엄연한 주체로서, 던져지는 과정에서의 방향, 속도, 중력, 그리고 건조 과정에서의 햇빛, 바람 등 우연적 요소들과 유기적인 결합을 이뤄내며 흙은 스스로의 존재성을 결정해야만 한다. 이로써 작가는 도외시되던 동양적 전통에서의 흙의 의미와 그 생명성을 회복시키고자 한다.
 
이강소 개인전 '바람이 분다: 조각에 관하여' 전경. /리안갤러리
이강소 개인전 '바람이 분다: 조각에 관하여' 전경. /리안갤러리
이강소 개인전 '바람이 분다: 조각에 관하여' 전경. /리안갤러리
 
한국 현대 미술계의 거장 이강소의 조각전 '바람이 분다: 조각에 관하여(The Wind Blows: About the Sculpture)'가 10월 28일까지 서울 창성동 리안갤러리에서 열린다. 1973년 명동 화랑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올해 화업 50주년을 맞이한 이강소는 이번 전시를 통해 전통적인 조각의 방법론에 현대적인 사고를 덧입혀 ‘던져’ 만든 조각에 집중하며 동시대 사회에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진다.
 
전시장 1층에 놓인 'Untitled' 연작 조각은 주물 작업으로, 토련기에서 나온 사각형 혹은 원기둥의 흙의 모양을 그대로 쌓아 올려 중력에 의해 쳐지게 하거나 흙을 허공에 던져 각각의 덩어리들이 서로 기대고 구겨져 독특한 또 하나의 흙덩이를 형성하는 과정을 그대로 포착했다. 그는 몇 개월의 걸친 자연적 건조 과정 속에서 수분의 증발, 수축, 갈라짐 등 흙 본래의 속성으로 일어나는 변형을 내버려 둔다. 
 
이들 조각은 회화 '바람이 분다-230103 The Wind is Blowing-230103', '청명 淸明 – 221202 Serenity-221202', '바람이 분다 – 230104 The Wind is Blowing.-230104', '청명 淸明 – 221203 Serenity-221203'(2023)과 함께 어우러지며 전시장을 생명의 기운이 생동하는 공간으로 꾸려내는 듯하다. 
 
Becoming-16-c-096. Terrcotta. 52x19x45cm. 2016. /리안갤러리
 
또 다른 조각 연작 'Becoming'은 세라믹 작업으로, 'Untitled' 연작과 마찬가지로 던져진 흙덩이의 우연적 형상을 그대로 유지해 낸 것이다. 이 작업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요소는 바로 색채다. 이강소는 흙이 가진 본래의 다양한 색채가 자유로이 나오게 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한다. 경주 흙을 1050도로 소성해 나오는 붉은색, 그 이상으로 소성했을 때의 초콜릿색, 산청의 흙을 1230도로 소성하면 나오는 자연 그대로의 노란 흙색, 또 중국에서 생산된 전통적 백자 흙을 1230~1270도로 소성해 은은히 발산되는 청백색의 맑고도 깊은 백색 등 모두 작가가 흙의 종류, 유약, 온도 등 흙의 유기적 에너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탄생했다.
 
이강소는 흙은 정지된 사물이라기보다는 기운을 지닌 생명이자,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과 상호작용하는 유기적 에너지로 연결된 존재라고 말한다. "비인간 객체로만 여겨졌던 흙의 생명성을 이번 전시에서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이강소 개인전 '바람이 분다: 조각에 관하여' 전경. /리안갤러리
이강소 개인전 '바람이 분다: 조각에 관하여' 전경. /리안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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