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6.02 18:00
김환기 회고전 ‘한 점 하늘’
작고 한 달 전 그린 검은 점화 등 120여 점
9월 10일까지 용인 호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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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블루’로 일컫는 김환기(1913~1974)의 파란색 점화는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수작이다. 김환기는 화면에 다채로운 여러 컬러를 도입했으나, 그중에서도 파란색은 작가가 가장 즐겨 사용한 색이었다. 점화는 캔버스에 유채로 완성되는데, 동양화의 그것처럼 번짐 효과를 한껏 살린 것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특성이 김환기의 점화에 더욱 신비롭고 묘한 감성을 더한다. 작가 특유의 서정적인 푸른 빛깔은 보는 이를 매료하며 심연으로 이끈다.
파란 점화가 율동적인 분위기라면, 검은 점화는 어떨까. 김환기의 검은 점화는 이전 그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검은 점화 시리즈는 작가 작고 몇 개월 전에서야 시작됐다. 당시 작가의 일기로부터 유추해 봤을 때, 이미 병세가 악화돼 가고 있었고 작가 역시 힘에 부쳐 작업도 녹록하지 않았던 듯 보인다. “새벽부터 비가 왔나보다. 죽을 날도 가까워 왔는데 무슨 생각을 해야 되나.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고.”(김환기 뉴욕일기 중, 1974년 6월 16일)
검은 점화에서는 작가 스스로 죽음을 예감하며 그간의 작업과 미술에 대한 사유가 변화하고 초월한 것이 드러난다. 파란 점화에서 볼 수 있었던 곡선이나 활발한 운동감은 사라지고, 수평적이며 정적이고 적요한 감상이 강해진다. 김환기가 검은 점화를 그린 이유를 직접 밝힌 적은 없으나,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과정에서 그러한 현실이 화면에도 반영돼 고요하고 적막한 점화로 표현된 것이 아닐지 짐작한다. 칠흑빛에서 작가의 두려움과 슬픔이 침윤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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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의 검은 점화를 포함해 작가의 40년 예술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규모 회고전 ‘한 점 하늘_김환기(a dot a sky_kim whanki)’가 9월 10일까지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검은 점화들이 공개되는데, 특히 김환기가 세상을 뜨기 한 달가량 전 그린 ‘17-VI-74 #337’(1974)가 내걸린다. 푸른 점화에서 보여준 다채로운 곡선 구획과 유려한 화면 변주는 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적막한 침묵이 감도는 것 같은 검은 점의 세계를 볼 수 있다. 김환기는 1974년 7월 7일 병원에 입원했고 그달 25일 세상을 떠났다.
미술관 1, 2층 전시실 전관에서 12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김환기가 한국적 추상에 대한 개념과 형식을 구축한 후 치열한 조형실험을 거쳐 점화에 이르는 과정의 변화와 연속성을 주지하며 살펴본다. 시대별 대표작은 물론, 도판으로만 확인되던 여러 초기작들과 미공개작, 작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스케치북과 드로잉들을 최초로 선보인다. 또한 유족의 협조로 김환기의 유품과 편지, 청년시절의 사진, 낡은 스크랩북 등이 처음으로 전시를 통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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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1부는 김환기의 예술이념과 추상형식이 성립된 193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의 작업을 소개한다. 이 시기에 작가는 한국의 자연과 전통을 동일시하며 작업의 기반을 다지고 발전시켜 갔다. 달과 달항아리, 산, 구름, 새 등의 모티프가 그림의 주요 주제로 자리 잡으며 그의 전형적인 추상 스타일로 정착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2부는 김환기가 뉴욕 이주 이후 지속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며 한국적이면서도 국제 무대에서 통할 새로운 추상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뉴욕 시기 초기까지 이어지던 풍경의 요소를 점과 선으로 흡수하여 추상성을 높이고 다채로운 점, 선, 면의 구성으로 수많은 작업을 시도한 끝에 점화에 확신을 얻고 1969년과 1970년 사이에 전면점화의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달과 산 등 풍경요소들이 선과 점, 색면으로 대체되는 ‘북서풍 30–Ⅷ–65’(1965), 김환기의 점화를 처음으로 알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1970), ‘우주’라는 별칭으로 사랑받고 있는 ‘5–IV–71 #200’(1971), 동양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하늘과 땅24–Ⅸ–73 #320’(1973)등이 전시된다. 입장료 1만4000원.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