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5.12 17:53
데미안 엘위스, 노은주, 정수영, 김찬송 등 국내외 작가 8인
서정아트 강남 ‘Reinterpretation’展 개최

작가의 작업실이란 은밀하며 내밀한 곳이다. 작업실 곳곳에는 아직 완성하지 않은 미공개 작품은 물론, 작가의 그림 밖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물건들까지도 널려 있기 때문이다. 데미안 엘위스(Damian Elwes)는 미술가의 아틀리에라는 장소적 특성에 매료돼 이를 소재로 삼아왔다. 엘위스에게 작가의 스튜디오란 하나의 사조가 탄생한 최초의 시발점이자 신성한 출발 지점과도 같으며, 물리적인 장소이기 이전에, 역사가 결합하고 축적된 성스러운 곳이다.
그는 피카소(Pablo Picasso), 마티스(Henri Matisse), 호크니(David Hockney) 등 유명 미술가들의 스튜디오를 캔버스로 옮겨오는데, 단순한 재현을 넘어 엘위스 특유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감을 통해 각 아틀리에를 더욱 실감 나게 표현함으로써,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이들의 작업실을 공공재와 같이 모두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장소로 치환해 낸다. 특히 작업실 주인, 즉 해당 미술가의 화법이나 화풍으로 이를 나타내 보는 맛을 더한다. 이러한 그의 ‘스튜디오’ 시리즈는 이미 사라지거나 없어진 대가들의 작업실을 되살리고 동시에 그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오마주 작업인 셈이다.




엘위스가 그린 파블로, 마티스, 칼더의 작업실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국내외 작가 8인이 모인 ‘Reinterpretation’전(展)이 12일부터 서울 논현동 서정아트 강남에서 개최된다. 재구성이라는 큰 틀 안에서 시각적 현상과 내적 감각의 발현에 집중해 메타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하는 전시다. 추상과 구상 회화, 조각, 오브제 등 다양한 출품작을 관통하는 주제는 ‘재구성’이다. 작가들의 감각적 산물인 이들 작품은 우리가 마주한 모든 것이 결국 개인의 경험에 의해 각기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또 재구성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한다.
전시는 네 가지 테마로 엮어 구성된다. 전시장 2층에서는 첫 번째 테마 ‘Space, Studio’를 주제로 엘위스의 회화를 비롯해 정수영, 브라이언 라이더(Brian Rideout)의 작품을 소개한다. 개인의 사적 영역을 드러내는 정수영의 작업은 정제된 구도와 틀을 벗어나 자연스러운 일상을 보여주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작품 속 각종 오브제는 포토샵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재배치돼 타인에게 작가의 내면을 내비치는 기능을 한다. 라이더는 온오프라인 인쇄물에서 발췌한 각종 현대적 이미지를 차용해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전유의 방식을 택한다. 정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작품 속 공간의 이미지는 불변하는 요소와 가변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시대만의 전유물이기도 하다. 액자식 구성으로, 그의 화면 안에는 어떤 작품들이 들어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전시장 1층의 두 번째 테마 ‘Scenery, Image’는 자연물에서 얻은 심상이 직관적 형태를 떠나 완전한 추상의 형태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안나 멤브리노(Anna Membrino)의 추상화는 자연에서 빌려온 소재로부터 비롯된다. 자연경관 등으로부터 특징을 추출해 작가의 내적 시선과 결합해 이를 캔버스에 담는다. 노은주의 ‘Silver Plant’ 연작은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한 장면을, 혹은 어느 한순간 특정 부분을 편집하는 방법으로, 불완전한 기억에서 오는 모호한 감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김채린의 조각은 현란한 색채와 흥미로운 모양으로 정적이고 고요한 심상을 벗어나 율동적인 감각을 더하는 듯하다. 한정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유희를 유도하며 작품과 작품 사이의 거리를 확장하는 작은 조각들이 보는 이에게 놀이를 요구한다.



마지막 두 테마 ‘Movement’와 ‘Expression’에서는 움직임을 지각하는 존재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 비언어적 감각을 깨우고 한발 더 나아가려는 김찬송의 회화와 일상 속 풍경을 모노톤의 주조색으로 처리해 색다른 시선으로 볼 것을 제안하는 정지윤의 회화가 내걸린다. 새롭고 낯선 시각으로 신체의 일부분을 확대한 김찬송의 화면은 물감 덩어리가 맞닿아 겹쳐져 완성된 작가만의 신체적 언어다. 물감을 뿌리고 흘리는 드리핑 기법으로 회화의 고유한 물성과 특징을 드러낸 정지윤의 작업 또한 전시에서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재구성의 한 부분이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