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5.09 17:03
이의성 ‘롱 트립’展
6월 3일까지 연남동 챕터투

이의성(41)은 우리의 삶이 ‘노동’을 매개로 현대 사회 구조와 어떠한 양상으로 얽혀있으며, 미술이 그러한 시스템에 어떻게 반문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주목해 왔다. 그는 대상의 본질적 속성은 바꾸고 외양을 빌려와 사물의 겉모습과 동일하게 제작해 내는데, 특히 스티로폼 등과 같은 비미술적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질문을 던지고자 함이다.
이의성 개인전 'Long Trip(롱 트립)'이 6월 3일까지 연남동 챕터투에서 열린다. 지난 2021~2022년 챕터투 레지던시에 참여했던 작가가 입주 성과를 새로운 신작 11점을 통해 발표하는 자리다.
이번 전시에서 이의성은 ‘냉동 참치’를 소재로 삼아 서로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상대성을 물질과 에너지의 여정으로 그려낸다. 작업실 내부의 시간이 외부 현실의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뒤늦게 알아채는 현재의 시간을 단초로 위치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물리적 혹은 심리적인 시간의 격차를 조각의 틀과 표면에 축적된 시간의 껍질로 담아냈다.

전시 타이틀과 동명의 출품작 ‘Long Trip’에서 전시장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대상은 냉동 참치를 본뜬 것이다. 통상 얼린 식품은 동일한 신선 혹은 냉장식품에 비해 값어치가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참치는 예외다. 참치는 먼바다에서 잡자마자 부패하기 쉬운 내장과 아가미가 제거된 뒤 영하 60도의 급속 냉동기에 들어가 6~12개월 정도 걸려 육지로 들어온다. 이렇듯 물리적 거리와 시간을 초월해 뭍에 도착한 참치는 지난 수개월의 시간이 축적된 얼음 껍질을 입은 채 적하된다. 영하의 온도가 참치의 표면은 팽창시키고 시간은 지연시키는데, 이 표면의 부피와 무게는 그간 투입된 에너지의 고체화된 형태이자 시간의 껍질과도 같은 셈이다.
이의성은 참치의 표면의 부피가 클수록 이를 포장하는 스티로폼 박스의 내부 표면적도 커진다는 사실에 착안해, 이번 작업에서 해동된 참치의 표면과 박스 내부의 표면 사이의 거리를 안과 밖의 시간의 격차 가늠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삼았다. 내부의 시공간을 펼쳐놓은 세 개의 스티로폼 박스는 참치의 표면의 두께에 비례해 격자의 깊이가 깊다. 격자에 채워진 실리콘 줄눈은 깊이에 따라 늘어나는 정도, 즉 중력의 크기가 커지고 이에 맞춰 내부의 시간이 외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천천히 흐르고 있음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이의성은 인하대학교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글래스고 예술학교에서 순수미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2019), 인사미술공간(2017)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위상공간(2022), 챕터투(2022), 갤러리바톤(2022), 쇼앤텔(2021), 전북도립미술관(2020), 우민아트센터(2019), 송은아트스페이스(2018)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했다. 제18회 송은미술대상(2018)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