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4.26 17:48
[제14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리뷰]
프랑스, 이탈리아, 우크라이나 등 9개국 참가, 역대 최대 규모



파빌리온, 이른바 국가관은 비엔날레의 본전시와 궤를 같이하나 독자적으로 꾸며지는 위성 프로그램에 가깝지만, 나라마다 구별되는 예술적 특성이나 심미안을 비교해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본전시와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비엔날레의 꽃이다.
올해 제14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은 9개국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운영된다.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제12회 광주비엔날레(2018)에는 3개, 2021년에는 2개 기관이 참가한 것에 비해 대폭 늘어났다. 캐나다, 중국, 프랑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스위스, 우크라이나 등 다수의 기관이 자국을 대표해 참가함으로써 국가관다운 면모가 한층 더 강해졌다.
이번 파빌리온 전시들은 광주시립미술관, 이이남 스튜디오,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동곡미술관, 은암미술관, 이강하미술관, 10년후그라운드, 양림미술관, 갤러리 포도나무 등 광주 곳곳에서 펼쳐지며, 동시대 화두인 기후 문제와 자국 전통, 소수민족 문화 등을 아우르면서 동시에 본전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의 주제와 상호작용한다. 아홉 곳의 다른 장소에서 열리는 만큼 모두 관람할 시간이 부족한 아트러버들을 위해 무조건 봐야 하는 ‘강추’ 파빌리온과 굳이 안 봐도 되는 ‘비추’ 파빌리온을 나눠 소개한다.



◆무조건 봐야 하는 ‘강추’ 파빌리온
―이탈리아 파빌리온: 파격적인, 문제적인.
‘잠이 든 물은 무엇을 꿈꾸는가?’
4월 7일―7월 9일, 동곡미술관
‘잠이 든 물은 무엇을 꿈꾸는가?’
4월 7일―7월 9일, 동곡미술관
파격적이며 문제적이다. 이탈리아 파빌리온을 둘러본 소감은 이러했다. 다른 국가관들에 비해 더욱 역동적이고 다층적인 작품들로 전시가 구성된 것이 배경인데, 그중에서도 아그네스 퀘스천마크(Agnes Questionmark)의 수중 퍼포먼스 ‘Drowned In Living Waters’(2023)는 단연 관객의 눈길을 가장 오래 잡은 작품이었다.
몸을 웅크려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의 수족관 안에서 작가는 눈을 껌벅이며 수족관 밖의 관객을 바라보거나 때로는 돌아누우며 발버둥 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행위와 얼굴에서 괴로움이나 기쁨 따위를 읽어낼 수 있지는 않다. 한 번 진행될 때 수 시간에 걸쳐 지속되는 이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그저 인체에 반하는 저항과 복원의 행위를 수행하며 인간으로서의 성별과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새로운 종의 탄생을 몸소 보여줄 뿐이다. 전시 관계자는 이 작품에 대해 “개인과 집단의 역사를 물과 연결하는 수문학적 순환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해당 퍼포먼스는 이탈리아관의 개막 기간에만 특별 운영됐으며, 아쉽지만 현재는 당시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을 상영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이탈리아 파빌리온은 ‘잠이 든 물은 무엇을 꿈꾸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올해 광주비엔날레가 ‘물’을 주제로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가진 물을 은유이자 원동력, 방법으로 삼은 것과 연계해 이탈리아관은 지속 가능하고 조화로운 미래에 대한 다각적인 탐구를 제안하는 다섯 작가의 작품으로 전시장을 꾸민다. 아그네스 퀘스천마크 외에도 카밀라 알베르티, 유발 아비탈, 마르코 바로티, 파비오 론카토 등의 작가가 참여해 물이라는 은유를 연결고리로 삼아 탈인간중심적 시각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사변적 가능성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선보인다.
이탈리아관을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마주할 수 있는 마르코 바로티(Marco Barotti)의 키네틱 사운드 작업 ‘Clams’(2019)도 눈여겨봄 직하다. 수십 개의 플라스틱 조개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데, 이는 작가가 광주 영산강에서 직접 수집한 수질 데이터를 소리와 동작으로 변환시킨 것이다. 플라스틱 조개들이 딱딱거리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인위적이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이스라엘 파빌리온: 다층적인 내러티브
‘불규칙한 사물들’
4월 7일―7월 9일,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이스라엘 파빌리온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깨어나는 감각은 후각이다. 향긋한 무언가가 공간을 가득 메우는데, 이는 ‘린스(hair conditioner)’ 향이다. 그리고 이내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들리는데, 실제 위에서 아래로 작품의 레퍼런스 이미지들을 따라서 흘러내리고 있는 진짜 물이다.
요차이 아브라하미(Yochai Avrahami)의 ‘The Fantasy of Compensation’(2023)은 여러 기념비적 사진과 이미지가 모여 하나의 신체를 이루고 있는 대형 설치 작업으로, 내부 파이프를 통해 물이 계속 흐르고 동시에 헤어 컨디셔너가 녹아내리며 거품과 향을 만들어 낸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안 등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판자에 인쇄돼 설치물 곳곳에 빼곡히 붙어있는데, 다소 거칠게 마무리된 듯 보이는 이 작업은 보는 이의 여러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듯하다. 아브라하미는 “헤어 컨디셔너를 통해 유분감과 향을 더함으로써 작품에 유연함이 가미돼 치유될 수 있길 기대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말 그대로 전시 타이틀 ‘불규칙한 사물들’처럼 무규율적이며 다원적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비교적 흔히 접하기 어려운 이스라엘 작가들의 설치 작업을 비롯해 영상, 오브제 등이 내걸렸다. 기계가 작동하는 가상의 초현실적인 도시 풍경을 만들어 상업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도시에 대해 논평하는 알로나 로데(Alona Rodeh)의 영상 작업 ‘Runway Freefall’(2022)은 황량한 야간 도시 풍경을 담은 순수 디지털 비디오 작품이다. 샤하르 프레디 키슬레브(Shachar Freddy Kislev)의 ‘Shoos’(2016)는 자아가 형성되는 느린 과정을 묘사한 애니메이션 영상이다. 사변적인 스토리보드로 준비된 상세한 과학 일러스트레이션을 기반으로 하며 특히 웅장한 오리지널 음악이 인상적이다.


◆굳이 안 봐도 되는 ‘비추’ 파빌리온
―중국 파빌리온: ‘대나무 귀신’이 붙었나
‘죽의심원(竹意心源): 뱀부로 보는 마음의 공간’
4월 7일―7월 9일, 은암미술관
‘죽의심원(竹意心源): 뱀부로 보는 마음의 공간’
4월 7일―7월 9일, 은암미술관
중국 파빌리온은 중국 문명에 깊은 영향을 준 대나무를 테마로 전시장을 꾸렸다. 중국 전통 문인화에서 주요한 심상 중 하나인 대나무를 주제로 삼아 사회적 변혁을 겪은 당대 중국 예술가들이 어떻게 문화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중국 고전의 자연주의를 오늘날의 미술 언어로 어떻게 재해석했는지를 보여준다. 다만, 전시 기획자는 조각, 설치 등 빛과 그림자 그리고 대나무의 관계를 강조한 동시대 미술품으로써 현대적인 공간으로 꾸미고자 했다고 설명했으나, 전시장 전반의 분위기는 현대적인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였다.
전시는 1층과 2층으로 나뉜다. 1층에는 류칭(Liu Qing)의 ‘도시의 대나무 그림자’라는 조각품이 위주로 내걸렸는데, 현대인 혹은 판다가 대나무와 함께 있는 형상이다. 보이는 그대로, 평범한 청년들과 대나무를 함께 대치함으로써, 현대인을 상징하는 이들이 대나무의 품격을 지니고 있다고 직접적으로 나타내거나, 대나무를 주식(主食)으로 삼는 판다를 역시 대나무와 함께 배치해 끊임없이 ‘대나무’를 온몸으로 주창하는 식이다.
2층에서는 장티안이이(Zhang Tianyi)의 ‘강인한 대나무’가 관객을 맞이한다. 현악기를 떠올리게 하는 모양의 이 작업은 대나무를 상징하는 초록색 구조물을 쇠줄이 팽팽하게 당김으로써 대나무의 끈기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출품작들이 직관적인 성격이 강해 오히려 이해하기 쉬울지는 몰라도, 대나무라는 소재에 중심을 너무 얽매인 나머지 궁극적으로는 작품보다는 오로지 대나무 그 자체만 기억에 남는 주객전도 전시였다.


―캐나다 파빌리온: 이게 전부라고?
‘신화, 현실이 되다’
4월 7일―7월 9일, 이강하미술관
캐나다 파빌리온은 ‘신화, 현실이 되다’란 주제로 이누이트 예술을 볼 수 있는 전시를 준비했다. 캐나다 킨게이트(Kinngait) 작가 30여 명의 작업이 90점 이상 대거 걸렸다. 독특한 미학을 지닌 킨가이트 예술가들은 정교하고도 독창적인 작업으로 잘 알려진다. 특히 케노유악 아셰박(Kenojuak Ashevak)은 이누이트 예술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대표작 ‘Rabbit Eating Seaweed’를 재해석한 작품이 전시장 입구를 장식했다. 또한 그의 조각 ‘Bear’가 진귀한 보석처럼 쇼케이스 안에 전시돼 있는데, 이누이트로서 북극과 그 생태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표현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대부분 최근 제작된 신작들이다. 그중 색연필, 잉크 등으로 그린 드로잉이 대부분이며, 조각은 3점만 있다. 이누이트 아트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해당 장르를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로 모은 자리라고 한다. 말인즉슨, 이곳에 걸린 작품이 이누이트 아트를 대표하고 이를 관객에게 첫선을 보인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이누이트 아트에도 다채로운 매체가 존재하나 이번 전시 출품작 대부분이 색연필 드로잉에 국한돼 있어 오히려 이누이트 아트를 한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전시를 다 둘러보고 이게 전부인지, 전시가 더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전시장을 재차 두리번거리는 관객들도 더러 있었다. 물론 이번 전시로 하여금 이누이트 아트에 대해 알리고 보는 이에게 물음표와 호기심을 자아낸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으나, 새로운 영역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기보다는 그냥 사그라질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