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3.21 16:32
BHAK, ‘흙갈피(Umbermark)’展, 4월 8일까지
개관 30주년 맞아 폭 3.6미터 초대형 회화 공개

청색과 암갈색을 섞어 만들어진 오묘한 흙빛, 이른바 ‘청다색(靑茶色)’으로 대표되는 윤형근(1928~2007)의 그림은 대담하면서도 절제미가 넘친다. 이를 무려 700호에 이르는 초대형 스케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윤형근 개인전 ‘흙갈피(Umbermark)’가 4월 8일까지 서울 한남동 BHAK(비에이치에이케이, 구 박영덕화랑)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대작 ‘Burnt Umber 94-66’(1994)를 포함해 작가의 197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작업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회화가 두루 걸렸다.
특히 폭 3.6미터, 높이 2미터가 훌쩍 넘는 크기로 관객을 압도하는 초대형 사이즈의 ‘Burnt Umber 94-66’는 번짐이 한결 절제된 흑색 기둥으로써 정갈하고도 강렬한 아우라를 자아내는 동시에 화면 깊이 응축된 윤형근의 예술세계를 한층 실감 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은 1993년 설립된 BHAK의 모태 박영덕화랑의 박영덕 대표가 1994년 구입해 소장해오다가 이번 전시를 위해 내놓은 것으로 알려진다. 올해 화랑 설립 30주년을 맞아 세대를 넘어서 박 대표의 장남 박종혁 대표가 운영하는 BHAK에 내걸리게 된 것으로, 갤러리로서의 본질을 되새기고 미래로의 도약을 위해 특별히 공개하게 됐다. 작품가는 13억원이다.


전시 타이틀 ‘흙갈피’는 땅의 지표면을 덮고 있는 흙과 책의 낱장 사이에 끼우는 물건인 책갈피의 갈피를 합친 말이다. 땅은 작가에게 물리적, 정신적, 예술적 대상으로서의 다중적인 대상이었다. 자신이 딛고 서 있는 현재의 땅과 예기치 못한 죽음, 두 번째로는 종국에 모든 만물이 회귀하는 땅이자 미래의 죽음을,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예술적 영감의 대상으로서 현실의 자연과 자연을 닮은 자신의 그림을 의미한다. 즉, 땅의 흔적들이 곧 윤형근의 삶과 예술이 남긴 흔적과 같다는 암시로 ‘흙갈피’란 명제가 나왔다.
출품작들은 윤형근의 작품에 표출된 형식적 특징과 작가의 사상을 포괄하고 관통하는 핵심을 찾아가는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하다. 윤형근은 화려하기보다는 담박하고 절제된 화풍으로 잘 알려진다. 표백 처리를 하지 않은 천이나 마포 위에 유화 물감을 있는 그대로 스미고 번지도록 함으로써 서양의 재료이지만 동양의 정서가 침윤한다. 이번 전시에서 윤형근 고유의 조형미와 그의 기품 있는 선비 정신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