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그리움은 무슨 색일까… 하태임이 그려낸 ‘녹색’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3.03.08 17:58

개인전 ‘그린 투 그린(Green to Green)’
아버지 향한 그리움을 ‘녹색’으로 담은 신작
4월 1일까지 아트사이드갤러리

Un Passage No.221064, 200X250cm, Acrylic on Canvas, 2022. /아트사이드갤러리
Un Passage No.221053, 130x130cm, Acrylic on Canvas, 2022. /아트사이드갤러리
하태임 개인전 ‘그린 투 그린(Green to Green)’ 전경. /아트사이드갤러리
 
“제일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냐 물으면 저는 여전히 연두색이라고 말해요. 연두색부터 암녹색까지 모든 녹색의 스펙트럼에 푹 빠져있죠.” 하태임 작가가 ‘녹색’을 주요 컬러로 삼아 제작한 신작 30여 점을 선보인다. 개인전 ‘그린 투 그린(Green to Green)’에서 작가는 녹색을 부각시켜주는 보조색을 세월 깊은 곳에 있는 기억의 파편들로부터 길어 올려 이번 전시장에 펼쳐내 보인다. 
 
전시의 주제인 ‘녹색(green)’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이는 작가가 부친과 함께한 기억으로부터 비롯된다. 그의 부친은 한국적 추상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하인두(1930~1989) 화백이다. “당시 암 투병 중이셨던 아빠와 보낸 마지막 초여름이었어요. 병원의 정원에서 휠체어를 밀어드리고 있으니 아빠가 제게 무슨 색이 제일 좋으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연두색이라고 답했죠. 그런데 아빠는 암녹색을 좋아한다고 하시는 거예요. 생명, 생기를 상징하는, 자연의 색으로 통상 생각되는 초록을 좋아하고 계신지는 그전까지는 몰랐어요.”
 
녹색은 보는 이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며, 동시에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하태임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녹색이 참으로 어려운 색임을 절감했다고 한다. 초록색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보조색을 활용하는 등 여러 시도 끝에 이번 출품작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 “두려움과 외로움을 마주할 때 비로소 새로운 것이 잉태될 수 있음을 알게 됐어요.”
 
하태임 개인전 ‘그린 투 그린(Green to Green)’ 전경. /윤다함 기자
Between Green and Green, Fabric, Aluminum, 2023. /아트사이드갤러리
Un Passage No.234018, 90x90cm, Acrylic on Canvas, 2023. /아트사이드갤러리
 
‘그린 투 그린’전(展)은 하태임이 아트사이드에서 가지는 네 번째 전시다. 작는 “무명 시절, 모 아트페어장에서 우연히 지나가시는 이동재 당시 대표님을 무작정 붙잡고 인사를 드린 적이 있다. 대범하게도 나는 대표님께 ‘아트사이드에서 전시하고 싶은 하태임이라는 작가’라고 소개드렸었다.(웃음) 그리고 2004년 아트사이드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2006년과 2009년에도 가졌다. 다시 14년 만에 아트사이드와 함께하는 이번 전시 덕분에 열정 넘치는 30대의 하태임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설치 작업을 비롯해 서로 다른 색을 덧칠하는 등 기존 컬러밴드와는 구별되는 신작을 대거 선보인다. 정갈하게 정돈된 컬러밴드 사이로 이질적인 터치가 등장하는데, 이는 작가의 이전 작업과는 다른 새로운 자유로움과 리듬감을 선사한다. 본래 그는 정교하고 세밀한 색띠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로서의 내적 충돌과 뜨거운 열망을 용기를 내 끄집어내 보고자 했다고. “원래 제 컬러밴드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작업 도중, 물감 한 방울을 캔버스에 뚝 떨어뜨렸는데, 왠지 보기 싫지 않았어요. 그걸 지우지 않고 그대로 살리면서 새로운 화면이 시작됐어요.”
 
하태임 개인전 ‘그린 투 그린(Green to Green)’ 전경. /아트사이드갤러리
하태임 개인전 ‘그린 투 그린(Green to Green)’ 전경. /아트사이드갤러리
Un Passage No.224096, 100x100cm, Acrylic on Canvas, 2022. /아트사이드갤러리
 
이번 신작에서는 캔버스 위 색띠는 두 가지의 색이 중첩되고 질감을 부여받아 보다 자유롭고 역동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1층 전시장을 들어서면 마주하는 200호 대형작업은 컬러밴드가 구현해내는 궤도와 질서의 공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듦과 동시에 그의 터치들은 우연의 효과와 만나 과감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기존의 조형언어와 새로운 변화의 만남은 하태임만의 독보적인 색채와 뚜렷한 작품세계를 더욱 견고히 하는 듯하다.
 
아울러, 지하 전시장에서는 수십 개의 알루미늄 막대와 다채로운 색이 엮인 섬유밴드들이 조화를 이룬 설치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컬러밴드들의 생동적인 움직임은 평면으로부터 3차원 공간으로 나온 컬러밴드가 실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안현정 미술평론가는 “하태임의 컬러 밴드는 겉으로 보기엔 팔의 한계를 시험하는 유한적 만곡선(彎曲線)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안에는 팔의 육체적 한계로 인해 보이지 않는 확장된 순환이 자리한다. 이제껏 믿어 의심치 않았던 통념과 상식을 향한 전복(顚覆), 감각적으로 경험되는 세계에 대한 비판적 사유가 작가의 신작들 사이에 아로새겨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4월 1일까지 열린다.
 
하태임 개인전 ‘그린 투 그린(Green to Green)’ 전경. /아트사이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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