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도 예술품이 되는 연금술… ‘도시의 수집가들’展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3.01.25 17:50

지나친 도시 풍경의 낯선 이면 조명
마틴 크리드, 강서경, 온 카와라, 이불 등
2월 28일까지 스페이스 이수

‘도시의 수집가들’ 전시 전경. /스페이스 이수
 
사정없이 마구 구겨진 종이. 공 모양의 동그란 형상을 지닌 이 작품은 실제 A4 용지를 주먹 크기로 구겨 뭉쳐 놓은 것이다. 마틴 크리드(Martin Creed)는 ‘Work. No. 88: A sheet of A4 paper crumpled into a ball’(1995)은 흔하디흔한 종이 쓰레기가 작가의 이름을 앞세워 전시장에 내걸리는 순간 예술로 전복되는 상황을 사유하게 한다. 크리드는 보는 이에게 예술이란 무엇이며 그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도시의 수집가들’ 전시 전경. /스페이스 이수
‘도시의 수집가들’ 전시 전경. /스페이스 이수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별난 수집가이자 일상적 사물을 예술적 작품으로 변화시키는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도시의 수집가들’전(展)은 작가들의 독창적인 작업을 찬찬히 살펴보며 우리 주변을 풍요롭고도 낯선 또 다른 시각으로써 ‘새로 보기’를 제안한다. 수집가적 관점으로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버려지거나 방치된 도시의 조각과 파편을 수집해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한 도시 풍경의 낯선 이면을 조명하고자 한다. 
 
마틴 크리드를 비롯해, 강서경, 마틴 보이스(Martin Boyce), 신로 오타케(Shinro Ohtake), 엘 아나추이(El Anatsui), 온 카와라(On Kawara), 이불, 주재환, 코디 최 등 이들 작가 9명은 사소한 일상품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작품으로 변환하는 연금술사적 면모를 보여준다. 의자, 접시 건조대, 소화제, 자개, 우편물, 엽서, 쇼핑백, 병뚜껑 등 보잘것없고 심지어는 쓸모없어서 버려질 만큼 가치 없던 도시의 사물들을 발굴하고 모으고, 또 해체하고 재배열하고, 덧붙이고, 직조한 작업을 통해 익숙한 도시 환경을 생경한 풍경으로 뒤바꾼다.
 
‘도시의 수집가들’ 전시 전경. /스페이스 이수
‘도시의 수집가들’ 전시 전경. /스페이스 이수
 
스코틀랜드 출신의 조각가로서, 도시 환경과 공공 공간에 관심을 가져온 마틴 보이스는 이번 전시에서 의자와 환기창을 모티프로 한 작업을 선보인다. 도심에서 흔히 보는 환기창에 텍스트를 새겨 넣은 ‘Around Every Corner (Ventilation Grills)’(2006)는 우리가 주목하지 못했던 것이 원래의 기능과 문맥에서 벗어나 과거와 현재, 외부와 내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드러낸다. 
 
코디 최의 대표작도 내걸린다. 로댕(Rodin)의 ‘생각하는 사람’의 진지한 모습이 ‘변기에 앉아 있는 사람’으로 유머러스하게 패러디된 ‘The Thinker, December #3’(1996)는 미국에서 이방인으로서 작가가 겪은 문화적 소화불량과 실제로 시달린 위장병 경험에서 기인한 작품이다. 그가 당시 복용하던 분홍빛의 소화제에서 영감을 얻어 이를 소재로 삼아 조각상으로 빚었다. 
 
아울러,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민중과 소통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자 한 민중미술의 대표적 작가인 주재환의 백화점 쇼핑백으로 제작된 인물상도 인상적이다. 도시에서 매일 배출되는 쓰레기 속에서 작가가 발견한 사물은 용도와 기능은 사라졌지만 그것들이 원래 속해 있던 장소와 상황을 환기하며 우리 삶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예리한 통찰을 던지는 듯하다.
 
‘도시의 수집가들’ 전시 전경. /스페이스 이수
‘도시의 수집가들’ 전시 전경. /스페이스 이수
 
이외에도 주변에서 수집한 일상적인 사물들을 의인화하여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고 불안하지만 아름답게 서로 지탱하는 우리의 삶을 투영하는 강서경, 인공의 테크놀로지나 기계 문명과는 대치되는 자연적 재료인 자개와 벨벳을 콜라주한 디스토피아적 풍경화로 오늘날의 시대상을 시사하는 이불, 다양한 시각 재료를 잘라내고, 덧붙이고, 쌓아 올려 시간과 기억이 켜켜이 쌓인 도시 풍경을 탐사하는 신로 오타케, 일어나고, 만나고, 걷는 일상적 행위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수집함으로써 시간의 본질을 포착하는 온 카와라, 도시의 버려진 쓰레기를 모으고, 엮고, 늘어뜨려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변모시키는 엘 아나추이의 작품도 볼 수 있다. 2월 28일까지 스페이스 이수. 무료.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