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1.10 18:08
강민수·김찬일·채성필·최영욱·허명욱
12일부터 2월 18일까지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 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라운지

흰색. 없거나 비어있는 상태가 아닌,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 온 세상의 빛깔을 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색이다. 흰 바탕, 흰 지지체 너머 총천연색의 이야기를 내재하고 있는 작품들도 그러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모인 다섯 명의 작가가 있다.
강민수, 김찬일, 채성필, 최영욱, 허명욱 5인전 ‘화이트 레인보우(White Rainbow)’는 서로 다른 다섯 작가가 한데 모여 빚어내는 무지갯빛 하모니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로, 12일부터 서울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와 서울 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와 아이프라운지 세 곳에서 동시 개막한다. 오프닝 리셉션은 12일 오후 4시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전통과 현대적 조형미가 어우러진 달항아리로 잘 알려진 강민수(51)는 오랜 인고의 시간이 요구되는 전통 장작가마를 고집하며 20년 넘게 담박하고 절제미 넘치는 달항아리를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에는 폭과 높이가 65cm가 넘는 초대형 달항아리 등을 내건다.
조각적 오브제를 활용해 회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 집중해온 김찬일(62)은 특유의 수행적인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중견 작가다. 캔버스 위의 작은 조각들이 만들어 내는 파동과 에너지, 보는 각도에 따라 빛과 그림자에 의한 촉각적인 화면의 생성은 빼놓을 수 없는 김찬일표 회화의 오리지널리티다.


이른바 ‘흙의 작가’로 일컫는 채성필(51)은 흙을 주요한 재료로 회화 작업을 선보인다. 흙에 대한 본질적인 원성을 새롭게 재해석해 동양화의 전통 기법과 서양 미술의 조형 어법을 효과적으로 접목한 작품으로, 동양의 오행설에 흙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모티프로 삼는다.
달항아리 그림 ‘카르마’ 시리즈로 아트 컬렉터의 수요가 높은 최영욱(59)의 회화도 내걸린다. 인연은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형성되듯, 위아래를 따로 만들어 붙인 달항아리 역시 다른 차원의 만남이 형성한 새로운 인연과 같다. 우주를 품고 있는 듯한 그의 달항아리 그림에 많은 이들이 매료되는 이유다.

장르와 경계를 넘나드는 허명욱(57)의 회화, 입체, 설치, 공예, 가구, 오브제 등이 총망라된 작품을 통해 옻칠의 현대적 확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집약적인 제작과정은 그 자체가 시간성이며 이는 곧 작가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한편, 이번 전시는 아트조선, TV CHOSUN, 호리아트스페이스가 주최하고, 아트조선스페이스와 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가 기획 하에 개최된다. 이들 작가의 다채로운 작품 47점을 통해 전통과 현대, 거침과 부드러움, 입체와 회화, 빛과 그늘 등 서로 다름의 상생과 조화로움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무료. 화~토 10:00~18:00. 문의 (02)736-7833

◆[미니 인터뷰①] 강민수 작가 “하나의 달항아리에 열 개의 얼굴이…”
─이번 전시 타이틀은 화이트레인보우, 즉 하얀 무지개인데, 유백색의 달항아리의 이름으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흰색이라고 통칭되지만, 달항아리의 흰색이 그리 간단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다. 달항아리의 유백색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동시에 그런 색을 내는 데 수없는 노력이 들어가야만 하는 색. 바로 달항아리의 설백색이다. 한편으로는 따뜻한 감성의 온백색도 공존하는 굉장히 오묘한 색이랄까. 내게 달항아리는 번쩍이는 백색이 아닌, 차분하고 은은한 온백색으로 다가온다.
─소나무를 때 굽는 전통가마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왜 전통가마인가.
전통 방식이 좋다. 자연과 직접 교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다들 편리하게 전기 가마, 가스 가마 등을 사용하는데, 나는 옛 달항아리에서 나타나는 그 색감을 낼 수 있는, 장작을 직접 때는 전통 방식이 좋더라. 힘들지만 이를 감수하고 수행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때고 불을 지핀다. 소나무로 때야 달항아리 특유의 색감이 나올 수 있다. 자연과 소통하며 내 마음 가는 대로 굽다 보면 어떤 때는 제법 괜찮은 항아리가 나오기도, 때로는 깨진 항아리가 나오기도 한다. 모든 것에 순응하고 받아들인다는 심정이 들곤 한다.

─도예가로서 다른 작업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달항아리에 매료된 이유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대학교에 가서 도자기를 배우면서 특히 스케일이 큰 작업이 좋더라. 밥그릇이나 국그릇보다도 달항아리에 그냥 마음이 더욱 갔다. 배우면 배울수록, 구우면 구울수록 달항아리에는 끝없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인위적이거나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달항아리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특히 보는 각도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달라 보여 하나의 작품임에도 마치 열 개의 다른 항아리처럼 다가오는 듯하다.

◆[미니 인터뷰②] 김찬일 작가 “회화적이지 않은 회화를 위하여”
─작은 조각을 하나하나 캔버스 표면에 세밀하게 부착 후 채색을 거듭해 화면을 완성해낸다. 단순한 평면과는 구별되는 부조회화로서 캔버스 자체가 오브제로서 기능하는 듯하다. 표면 위의 작은 기둥들은 무엇이며, 어떻게 착안하게 된 것인가.
미술을 시작할 때부터 회화를 좋아했지만 가장 회화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작업을 풀어내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평면에서의 물감으로 입체감을 냄으로써 탈회화적인 회화를 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하드보드를 잘라 화면 위에 이를 핀셋으로 일일이 붙여 회화를 벗어난 형태를 지니는데 작업 초창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초기에는 기둥을 붙인 것이 아닌, 역으로 캔버스에다가 구멍을 뚫었다. 펀치로 뚫다 보면 캔버스 위로 볼록하게 튀어나오는 모양은 또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긴 하다. 이후 오브제를 에폭시로 부착한 작업으로 이어지다가 현재의 ‘Line’ 시리즈까지 이르게 됐다. 이미 존재하던 것을 따르기보다는, 상자 안을 벗어나 규칙 밖에서 새로움을 찾아보고자 하는 열망과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 같다. 늘 새롭고 신선한 것을 갈망한다.

─그림에 파란색, 빨간색, 하늘색부터 블랙, 화이트 등 다채로운 색을 사용하는데, 이들 빛깔은 어떤 계기로 화면에 차용하게 됐나.
내게 색이란 감정의 덩어리다. 단순히 시각적인 것을 넘어서 색채는 스펙트럼을 지니는데, 이들 색은 여러 감정과 감흥이 뒤섞여 나온 결과물인 셈이다. 안료를 따로 구입해 광물질 등을 직접 섞어 만들어낸 색들이다. 때로는 원색에 가깝기도, 때로는 어떤 색이라 콕 집어 말하기 힘든 묘한 색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작업 시기별로 색감에 차이가 크게 나곤 한다.

◆[미니 인터뷰③] 채성필 작가 “흙은 세상의 근원… 내 그림은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
─흙을 소재로 삼아 자연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회화가 대지 혹은 물결을 연상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흙을 재료로 삼게 된 계기는.
흙을 처음 재료로 사용해본 것은 대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행에서 흙을 채집해와 써본 것이다. 흙은 내게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자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어머님에 대한 감상이다. 동시에 흙이란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작업에 대한 이상적인 가치이자 정신성을 담은 물질이기도 하다. 인간의 본질과 그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이랄까. 이처럼 흙은 모든 것들의 중심에 있다.
─동양화를 전공했다. 흙 외에 은분 등의 재료를 도입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지금의 화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한데.
동양에서는 자연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보지 않나. 그 자연의 탄생 배경에는 오행이 있다. 나는 나의 화판에 오행의 다섯 가지가, 마치 태초에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질 때처럼, 그 오원소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은분 등을 끌어들이게 됐다. 흙과 물, 천과 종이는 나무를, 그리고 금속을 상징하는 은분, 여기에 불을 뜻하는 먹을 사용함으로써 나만의 오행을 완성한 셈이다. 화판이란 덩어리 자체가 근원의 공간이 되길 바랐다.

─화면에 황토색, 파란색 등 여러 색이 존재한다. 작업에 있어 색이란 무엇인가.
어떤 색이든 근원은 흙이라는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흙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그릇과도 같다. 푸른빛의 회화는 ‘물의 초상’이란 명제를 지니는데, 물은 땅의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라고 생각한다. 물 또한 땅이란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원과 본질을 강조한다. 이들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변화를 뛰어넘을 수 있는 건 근원에, 본질에 있지 않나. 모든 게 근원으로 귀결되는 이유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다. 각자 이상적인 가치를, 중요한 것을 제각기 찾아 향해가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그 방법으로 그림을 택했고 그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상적인 가치를 담고자 한다. 현대 미술이란 필연적으로 변화와 유행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나, 혼란스러운 범람 안에서 그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근원일 것이다.

◆[미니 인터뷰④] 허명욱 작가 “시간성은 곧 정체성”
─옻은 까다로운 재료로 다루기 어렵다고들 하지 않나. 또한 철판부터 나무판, 천 등 다양한 지지체 위에 옻칠을 하고 건조하고 벗겨내고 다시 이를 거듭 반복하는 과정도 보통 열의로는 지속하기 어려울성싶은데, 옻칠 작업을 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시간성’은 내 작업의 주요한 주제다. 옻 이전에 다른 재료를 사용할 적에도 주제는 여전히 시간성이었다. 이를 고집하다 보니 자연스레 옻칠 작업을 지속하게 됐다. 옻이 다루기 까다로운 데에는 이 역시 시간 때문이다. 옻칠은 시간을 갖고 찬찬히 발색하는데, 이를테면 겨자색을 칠했는데 막상 건조장에서 나오고 보면 짙은 밤색이라든지 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어렵다고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성이란 특성 때문에 더더욱 옻을 채택하게 됐다.
─시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작업 안에 축적돼 있는 시간들이 궁금하다.
작품은 그 작가의 시간과 경험이 총체와 같다. 나뿐만 아니라 시간성은 모든 작가에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일 테다. 내 작업에는 나의 예닐곱 살 이후의 시간들이 축적돼 있다. 기억이란 것을 하기 시작한 이후의 나의 경험들과 시간들이 알게 모르게 작업에 묻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작품 안에 나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배경이다.
─특정 형태보다도, 색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추상 평면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블루, 골드, 레드 등 여러 빛깔의 컬러가 작업에서 의미하는 바는.
색은 감정이다. 아침에 작업실로 출근해 가장 먼저 색을 배합한다. 그날그날의 나의 감정이 색으로써 드러난다. 언젠가 독일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내게 한국의 색은 무엇이냐고 묻더라. 이에 ‘내가 사용하는 색이 한국의 색’이라고 답했던 기억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색 역시 작가의 경험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간색(間色)을 선호하는데, 작업 역시 한가지로 규정지어지기보다는 여러 형태로 이어오고 있듯이, 색깔도 경계에 있는 색이 좋더라.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