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 나는 너… 왜냐면 달은 둥그니까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2.11.04 20:42

강익중 개인전 ‘달이 뜬다’
상극도 화합하게 만드는 ‘달항아리’ 형태와 상징성 차용
12월 11일까지 갤러리현대·두가헌

달이 뜬다, 2022, 린넨에 아크릴릭, 각 60x60x4cm. /윤다함 기자
강익중 개인전 ‘달이 뜬다’ 전경. /갤러리현대
 
강익중(62)은 동양과 서양, 자음과 모음, 음과 양, 인간과 자연, 남과 북과 같이 서로 다르거나 상반된 대립 관계에 놓인 것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이들을 한데 연결해 하나의 우주로 엮어낸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는 다른 문화, 언어, 환경도 서로 공존하며 화합하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조화로움을 상징하는 대상으로서 달항아리의 형태와 그에 담긴 한국 전통적 미학과 정신성을 차용해 화면에 옮긴다.
 
달항아리는 상부와 하부를 합쳐 그사이를 손으로 잇고 가마에서 하나의 몸채로 완성된다. 이러한 제작 방식 자체는 작가 작업의 바탕을 이루는 연결과 화합의 개념과 궤를 같이한다. 달항아리를 화면에 끌어들이게 된 계기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는 당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거대한 구(球) 형상의 공공 미술품을 제작하는 도중, 작품 일부가 손상되며 완벽한 원형이 아닌 한쪽이 치우쳐 기울어진 형태를 띠게 되는데, 작가는 여기서 달항아리를 발견한다. 이때부터 한국적인 문화와 정서, 미적 가치는 물론, 동그라미처럼 모든 것이 연결되는 조화로운 형태인 달항아리는 강익중의 시그너처가 된 것.
 
강익중 작가. /갤러리현대
 
‘연결’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연작 ‘내가 아는 것’에서도 이어진다. 3인치 크기의 정방형 우드패널에는 알파벳 한 자가 쓰여 있고, 이들이 모여 단어가 되고 다시 문장을 이루며 전시장 벽면을 가득 메운 수백, 수천개의 우드패널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 강익중의 대표작이다. 이는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는 우리네 세상을 뜻하며 강익중 작업 세계에서의 핵심인 연결성을 가장 잘 보여주기도 한다.
 
1984년 뉴욕 유학 시절, 작가는 작은 캔버스 여러 개를 가지고 다니며 틈틈이 그리곤 했는데 이때의 경험에서 ‘3인치’ 작업이 비롯됐다. 작은 캔버스 안에 그의 일상이 각종 문자, 기호로써 응축됐다. 이 작품은 뉴욕 이주의 경험과 문화적 괴리감, 고향과 뉴욕의 일상적 모티브라는 강익중의 사적 역사가 담긴 패널로, 한국과 미국, 그의 유년 시절과 현재, 고향과 타향, 과거와 현재 등 시공간이 중첩된다. 다른 것 혹은 끊어진 것을 연결하고자 하는 그의 평생 화두가 시작된 지점인 만큼 작가의 작업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작품이다. 
 
강익중 개인전 ‘달이 뜬다’ 전경. /갤러리현대
강익중 개인전 ‘달이 뜬다’ 전경. /갤러리현대
 
강익중 개인전 ‘달이 뜬다’가 12월 11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와 두가헌에서 열린다. 그간 뉴욕을 기반으로 국제 미술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작가가 12년 만에 국내 갤러리에서 가지는 개인전으로, 처음 공개되는 최신작을 비롯해 주요 연작 200여 점과 지난 12년간 세계 곳곳에서 공개한 대형 공공 프로젝트의 스케치, 아카이브 그리고 작가의 시가 함께 소개된다.
 
그의 새로운 연작 ‘달이 뜬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지러지는 달과 달에서 반사된 태양 빛에 의해 달 주변부에 나타나는 형형색색의 달 무지개를 그린 작업이다. 지난해 여름 우연히 밤하늘에서 달 무지개를 봤다는 작가는 이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으나 기회를 놓쳤는데, 끊임없이 움직이는 시간을 잡으려고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떠올리며 이를 화면에 옮겼다고 한다.
 
강익중 개인전 ‘달이 뜬다’ 전경. /갤러리현대
 
흥미로운 설치 작품도 내걸린다. 뒤집어진 밥그릇 500개가 산처럼 쌓인 모양의 ‘우리는 한 식구’는 마치 밥을 뜸들이는 동안 밥솥 옆에 놓인 밥공기들 같아 보인다. 밥이 다 지어지길 기다리듯이 남북이 통일되고 모두가 화합해 다 같이 밥 먹을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라 작가는 설명한다. 밥을 함께 먹듯이 일상에서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우리’를 ‘식구’라고 칭하며 남과 북, 가족과 민족의 의미를 환기한다. 
 
강익중 작가가 자신이 쓴 시 ‘내가 아는 것’ 앞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다함 기자
 
한편, 작가는 1984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뉴욕으로 건너가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수학하고 1987년 졸업한 이후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994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멀티플/다이얼로그’전을 열었고,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 대표로 참가해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9년 파주 통일공원에서의 ‘10만의 꿈’ 설치와 2001년 뉴욕 UN본부에서 ‘놀라운 세상’, 2005년 루이빌 무하마드알리센터에 ‘놀라운 세상(희망과 꿈)’, 2009년 3인치 작품 6만여 점이 전시된 국립현대미술관의 ‘삼라만상: 멀티플/다이얼로그 ∞’ 등 수많은 설치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런던 대영박물관, 뉴욕 휘트니미술관, 로스앤젤레스현대미술관, 보스턴미술관, 루드비히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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