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10.20 10:55
윤상렬 개인전 ‘조금. 조금. 조금.’
11월 19일까지 청담동 이유진 갤러리

윤상렬의 화면에 ‘섬세한 선’과 ‘검은색’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10년부터 시작한 ‘침묵(Silence)’ 연작에서였다. 손으로 종이에 그은 직선 드로잉 위에 디지털 프린트로 다양한 굵기와 색의 날카로운 선을 출력한 아크릴판을 중첩하고 그 위에 유리 액자처럼 반사하는 층을 더한 후 나무 프레임으로 형상을 가두는 식이다.
그에게 프레임은 작품의 시작과 끝을 규정하는 것이자 보는 이에게 프레임 안의 형상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불러오는 장치다. 작가가 ‘드로잉’이라 부르는 선 긋기 작업은 그가 직접 만든 대형 제도판에 종이를 놓고 다양한 두께의 샤프심으로 무수한 직선을 축적한 결과물이다. 그 위에 겹쳐지는 디지털 프린트는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업체와의 무수한 테스트를 거쳐 실현된 것이다.

드로잉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선의 두께와 선 사이의 간격을 통해 일차적인 공간감이 형성되는데, 이러한 화면 위에 미세하게 다른 색과 두께의 직선이 새겨진 아크릴 판이 겹쳐지고 다시 유리가 2mm 정도의 세밀한 간격을 유지하며 중첩됨으로써 3차원적 깊은 입체감이 빚어지게 된다.
이들 선 사이의 엄격한 질서 안에 미묘한 색조의 변이가 만들어내는 파장과 공간감은 관람자가 작품을 시각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앞뒤로 움직이면서 시시각각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관객이 그의 작품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들여다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전적 재료인 종이와 샤프펜, 여기에 디지털 프린트를 함께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는 배경에 대해 윤상렬은 “시대와 환경에서 변화하는 재료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그의 말과 살아온 과정대로 시대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재료와 소재에 대해 완벽히 이해한 후 한 겹 한 겹, 조금 조금 쌓아온 총체적 결과물이다.

윤상렬 개인전 ‘조금. 조금. 조금.(a little. a little. a little.)’이 20일부터 11월 19일까지 서울 청담동 이유진갤러리에서 열린다. 미세한 선과 색의 변주, 그리고 여러 층의 레이어로 시각적 환영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대표작 20여 점이 내걸린다.
윤상렬은 지금까지 ‘조금’이라는 주제로 세 번의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전에 열린 ‘조금 낮게 조금 높게’(갤러리소소, 2020), ‘조금 조금’(굿스페이스, 2021), 그리고 ‘조금 어둡게 조금 밝게’(갤러리데이트, 2021)에서의 공통된 주제를 다시 잇고자 한다. 기존보다 더 다양한 색조와 사이즈의 작품을 선보인다.
한편, 작가는 베트남국립미술관의 ‘한국-베트남 현대미술교류전’, 경기도미술관 등 다수의 기관에서 주최한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대구미술관, 하나은행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이번 전시는 그의 14번째 개인전이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