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속내를 알고 싶다면 옆을 봐라… 김근태展 ‘Discussion’

  • 부산=윤다함 기자

입력 : 2022.09.23 17:39

화면 정면(正面)에선 짐작할 수 없는 반전의 ‘측면부’
10월 30일까지 부산 데이트갤러리

김근태 개인전 ‘Discussion’이 10월 30일까지 부산 데이트갤러리에서 열린다. /부산=윤다함 기자
김근태 개인전 ‘Discussion’이 10월 30일까지 부산 데이트갤러리에서 열린다. /부산=윤다함 기자
 
김근태는 단색 물감을 바르고 말리고 또 바르기를 거듭하며 동시에 마음은 비워내는 수행적인 태도를 회화에 투영해왔다. 화려한 꾸밈이나 수식 없이 담백한 김근태의 그림에서 정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측면부다. ‘결’이란 별칭으로 잘 알려진 작가의 오일페인팅 연작 ‘Discussion’을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캔버스의 옆구리까지 봐야 한다.
 
그의 그림을 앞만 보자면 단일 색으로만 뒤덮인 화면에 일견 단조로움과 심심함을 느낄 수 있으나, 실상 한가지로 보이는 그 색상을 구현하기 위해 김근태는 수 가지의 색상을 수십, 수백 번 층층이 뒤덮기를 거듭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을 화면을 정면으로만 바라볼 때는 쉬 가늠하기 어려운데, 간혹 그림 한 가운데 생채기와 같은 흔적이라도 있을라치면 표면 아래 숨은 물감층의 속살이 슬쩍 드러날 때도 있지만, 이마저도 가까이서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김근태 개인전 ‘Discussion’이 10월 30일까지 부산 데이트갤러리에서 열린다. /부산=윤다함 기자
김근태 개인전 ‘Discussion’이 10월 30일까지 부산 데이트갤러리에서 열린다. /부산=윤다함 기자
김근태 개인전 ‘Discussion’이 10월 30일까지 부산 데이트갤러리에서 열린다. /부산=윤다함 기자
 
세필이 하나하나 정교하게 훑고 지나간 것처럼 정갈한 결이 이뤄낸 캔버스의 정제된 정면의 이면에는 투박하고 과단성 있는 성미가 비죽 고개를 내밀고 있다. 지움과 절제를 통해 궁극의 비움을 그려내지만 그의 화면이 어떠한 경지보다도 묵직하고 그득할 수 있는 이유다. 또한, 정결하고 섬세하게만 보이던 겉모습 아래에는 남성적이고 거친 면모가 내재돼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앞면만 봤을 때는 짐작할 수 없던 빛깔의 속살을 마주하고 있자니 이채로운데, 겉은 백색이나 측면부에는 생각지 못한 청색이 물감층 사이로 보이는 식이다. 특히 작가는 측면부에서 이들 레이어를 무심한 듯 살그머니 내비침으로써 현대적인 세련미를 더욱 배가한다. 이렇듯 상반된 두 성격이 공존하며 작품 내 공명하는 하모니를 더욱 견고히 한다.
 
김근태 개인전 ‘Discussion’이 10월 30일까지 부산 데이트갤러리에서 열린다. /부산=윤다함 기자
김근태 개인전 ‘Discussion’이 10월 30일까지 부산 데이트갤러리에서 열린다. /부산=윤다함 기자
 
최근 열린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를 통해 해외 미술관계자에게 큰 호평을 받은 김근태가 자신의 대표 연작과 동명의 작품전 ‘Discussion’을 10월 30일까지 부산 해운대 데이트갤러리에서 가진다. 그는 ‘숨’이라고 알려진 이른바 ‘돌가루 작업’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현재 미술시장에서 주요하게 거론되는 작가 중 하나다. 이번 전시에는 ‘숨’과 함께 유화 작업 ‘결’이 함께 내걸린다. 매끈한 정면의 화면과 대비되는 거친 측면의 회화 신작을 다수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평론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철학박사 출신으로 문화예술비평가로 활동 중인 홍가이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와 일본 미술평론가 치바 시게오(Chiba Shigeo) 전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학예실장이 맡았다. 치바 평론가는 “회화라는 평면이 운명 지어진 표현인 ‘근대 회화 종언’ 이후에는 시선이 직접 그 내부를 움직이는, 그런 확대로 회화 공간을 실현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김근태 작가가 시도하고 있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라며 김근태의 작품세계 속 ‘확대’의 개념을 궁극적으로 어떻게 인식할 그것인가에 대한 고찰을 끊임없이 서술한다. 홍 평론가는 한결같고 고유한, 또 아주 한국적인 ‘삭힘의 미학’의 담론 속에서 담백함을 추구하는 김근태의 작품이 비로소 한국발 신예술운동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근태 개인전 ‘Discussion’ 전경. /부산=윤다함 기자
 
인간의 세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으나, 자연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우직하게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그것과 구별된다. 김근태는 자연의 진리는 변하지 않는 확고함이라고 말하며 이에 대한 담론(discussion)을 회화로써 제안하고자 한다. 내보일 것도, 감출 것도 없는 태연무심한 그 자체가 그의 그림이기에, 이를 마주하면 세상사에 치여 지치고 피곤한 심신이라도 정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편, 김근태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한국과 독일, 파리, 홍콩 등을 넘나들며 국내외에서 전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극사실주의와 민중미술의 흐름이 강했던 1980년대 초반부터 추상화 작업에 몰두하며 꾸준히 작업을 이어온 작가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은 단색화의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김근태 개인전 ‘Discussion’ 전경. /부산=윤다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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