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그릴 줄 아냐고? 여기 그에 대한 ‘권지안’의 화답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2.08.26 16:24

[인터뷰]
화단(畫壇) 입문 십 년째… ‘전업 작가’로서의 권지안
‘Beyond the Apple: Systemized Language’展
9월 18일까지 논현동 갤러리치로

‘Beyond the Apple: Systemized Language’전이 열리고 있는 논현동 갤러리치로에서 만난 권지안 작가. 제이슨 리버와 함께 협업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아트테이너’란 아트(아티스트)와 엔터테이너를 결합한 합성어로, 미술계로까지 활동 범위를 확장한 연예인들을 지칭한다. 이들의 이러한 행보를 향한 비아냥거림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반면, 축복 받은 예술성의 다채로운 표출 방법 중 하나로 인정하며 관심 있게 지켜보는 미술애호가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TV 화면도 모자라 캔버스 화면으로까지 진출한 아트테이너를 만나, 여느 아티스트 인터뷰처럼 작가로서 어떠한 예술세계를 지니고 있는지 묻고자 한다. [편집자주]
 
‘작가님’이란 호칭으로 그와 첫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부르는 이도, 듣는 이도 어색함이 없었다. 그렇다. 솔비란 예명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권지안(38)은 작가다. 미술가로서의 활동을 이어온 지 어느덧 십 년째다. 작가는 그에게 있어 더는 ‘부캐’가 아닌 본업과도 같다. 지난해 말 ‘바르셀로나 국제 예술상(The Premi Internacional d'Art de Barcelona·PIAB21)’에서 대상인 ‘그랜드 아티스트 어워드’를 수상하며 미술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진 그는 국내에서 전시 활동을 이어오며 더욱 많은 관람객과 소통하고자 한다. 전시 ‘Beyond the Apple: Systemized Language’가 열리고 있는 서울 논현동 갤러리치로에서 권지안을 만났다. 회화를 비롯해 평면 부조, 네온 작업 등 매체와 소재를 확장해오고 있는 그의 예술세계에서 주요한 어젠다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이번 전시는 9월 18일까지 이어진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9월 13일까지 비스타워커힐 프린트베이커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Humming - Paradise’에 전시된 ‘Humming Letter 03’(2022). /엠에이피크루
 
─열 번째 개인전 ‘Humming - Paradise’가 프린트베이커리 워커힐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진행되는 동안 이곳 갤러리치로에서 또 다른 전시 ‘Beyond the Apple: Systemized Language’가 동시 오픈했다. 왕성한 활동이 인상적인데, 대체 그 원동력은 어디서 샘솟나. 
 
비결이 있다기보다는 아직은 젊어서 그렇다.(웃음) 지금이 가장 영감을 많이 받을 때이고 작업도 잘 풀리고 있다고 스스로 느낀다. 소중한 이때를 그냥 흘려보낸다면 훗날 너무나 아쉬울 것 같아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의 전력을 쏟고 있다. 나를 찾아온 기회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이번 전시는 대표작 중 하나인 ‘애플 시리즈’로 구성된다. ‘애플 시리즈’는 사이버불리, 이른바 ‘악플’을 겪은 경험에서 기인했다. ‘사과’라는 소재는 작업에 있어서 중의적 의미를 지니며 다채로운 형태로 등장, 활용되고 있는데, 왜 하필 사과였나. 
 
그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내게 ‘사과는 그릴 줄 아냐’며 비아냥거렸다. 하고 싶은 것 한다고 했을 뿐인데, 온라인에서는 마치 내가 큰 잘못을 한 사람인 듯 몰아갔고 나는 그것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인터넷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임에도 여전히 사이버불링(cyberbullying)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한 것이 실정이다. 익명성을 내세워 상처를 주는 댓글을 서슴없이 다는 이들이 너무 많다. 나는 작업을 통해 단순히 피해자로서의 호소에 그치지 않고, 그다음을 논하고 싶었다. 이에 굴하거나 숨지 말고 예술로써 용기를 내고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너 사과는 그릴 줄 아니’란 물음에 화답하는 자리다. 
 
A(k)pple, 2022, Mixed media on canvas, 45.5×53cm. /엠에이피크루
A(k)pple Menual, 2022, Pigment print on canvas, 91×117cm.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이처럼 사과는 내 개인적인 삶에서나 작업 세계에 있어 주요한 매개적 역할을 수행한다. 사이버 유토피아를 꿈꾸는 상징적인 심벌이자, 온라인상의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언어를 정화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자세히 보면 작업에서 사과가 다양한 색깔로 등장하는데, 컬러마다 고유의 알파벳과 치환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언어 대신 알록달록 사과를 나열해놓는 식이다. 정 그렇게 욕하고 싶다면 말이 아닌 사과로 이야기하자는 취지다. 직접적이지 않기 때문에 듣는 입장에서는 상처를 덜 받을 테고, 동시에 언어를 사과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애초에 욕하려고 했던 심정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도 있지 않겠나.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문제를 심도 있게 논하고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힘이라고 믿는다. 온라인 폭력을 예술로써 헤쳐 나가고자 한다.
 
제이슨 리버와 협업한 또 다른 작업. 리버의 사진 위에 권지안은 ‘허밍 시리즈’에서의 드로잉을 덧입혔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언어를 초월한다는 점에서 ‘애플 시리즈’와 또 다른 대표작 ‘허밍 시리즈’가 서로 궤를 같이하는 듯하다. 
 
그렇다. ‘허밍 시리즈’ 역시 언어 순환, 언어 초월을 담고 있다.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아빠를 향한 그리움을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걸 절감했는데, 말과 글만으로 감정을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더라. 이러한 제한을 넘어서는 나의 마음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 ‘허밍 시리즈’다. 내 심정을 흥얼거림으로, 또 이를 선(線) 드로잉으로 암호처럼 드러냈다.
 
권지안과 제이슨 리버가 협업한 ‘Bubble Wrap No.29(Her Apple)’(2022). /엠에이피크루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이번 ‘Beyond the Apple’전(展)은 기존 전시와는 조금 다른 특별한 구성으로 꾸려져 눈길을 끈다. 제이슨 리버(Jason River)와 최재용 두 작가와 각각 협업한 작품들을 함께 선보이는데 소개 부탁한다. 
 
이런 협업 형태의 전시는 처음 시도해본다. 제이슨 리버 작가와는 지난 5월 뉴저지에서 열린 초대 개인전에서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됐다. 그에게 내가 한국에서 미술 비전공자로서 어떠한 시선을 받아왔는지 말해주자 내게 진심 어린 격려를 건네줬다. 특히 내 사과 작업이 참으로 흥미롭다며 대화 도중 갑자기 노트에 사과 형상의 스케치를 하더니 협업을 제안했다. 그렇게 컬래버레이션 작업 ‘Bubble Wrap No.29(Her Apple)’이 성사된 거다. 이 작품을 통해 좀 더 단련되고 단단해진 내 안의 자아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최재용의 설치 작업 ‘압펠 가르텐’도 전시됐다. 권지안의 ‘사과’가 작품 가운데 내걸린 것을 볼 수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설치미술에 몰두해온 최재용 작가와는 본래부터 사이가 가까운 예술적 동지였다. 나 또한 설치 작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와 이번 협업을 진행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최재용 작가는 자신의 설치품 ‘압펠 가르텐(Apfel garten)’에 내 사과 작업을 결합해 그만의 해석과 위트를 더했다. 이들 작가와 이번 전시를 함께함으로써 사이버불링을 향한 투쟁의 행보에 좀 더 무게를 실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내 작업도 이전보다 확장된 듯하다. 
 
─현대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담은 작업을 통해 자기 내면과의 소통, 아울러 대중과의 소통에 집중하고 있지 않나. 이처럼 ‘소통’이 작업에서 주요한 화두 중 하나인데, 왜 그렇게 중요한가.
 
예술의 본질 자체가 소통, 즉 공감을 통한 공유와 공헌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내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였지만, 작업을 거듭하다 보니 내 자신이 치유됨은 물론, 내가 경험한 미술의 순기능을 많은 이들과 사회에 공유하고 싶어지더라. 원래 해왔던 대중예술의 한계를 넘어서는, 보다 예술적인 의미에서의 공헌을 하고 싶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해 말 ‘바르셀로나 국제 예술상’에서 ‘대상(그랜드 아티스트 어워드)’을 수상하며 기쁨과 동시에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수많은 참여 작가를 제치고 대상을 받은 배경은 무엇이라고 자평하나.
 
솔직히 나도 그들이 내게서 무얼 봤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저 내 작업에 내재된 직관적이고 순수한 무언가를 발견한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다소 투박할지라도 그것이야말로 다른 작가들과는 구별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심사위원들이 대부분 원로작가들이었기에 그런 것에 신선함을 느낀 것 같다. 작품이 좋고 나쁘고는 주관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작업에 임할 때만큼은 진심을 다하고 작업에 스스로 당당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상을 준 건 마치 그런 나를 편들어준 것과 같았다. 심사위원 중 한 분이 행사가 끝날 때쯤 내게 다가오셔서는 등을 두드려주시며 절대 작업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신 게 참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서 만난 작가들과 큐레이터들, 평론가들, 미술계 어르신들의 눈빛으로부터 큰 위안을 받았고, 그들과 비록 말은 통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경험을 했다. 
 
─십 년째 전시활동을 꾸준히 이어오며 작품에 매진해오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여전히 작가를 향한 못마땅한 눈초리가 존재한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입 밖으로 어떤 말을 내뱉지 않고 그저 ‘사과’로써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말한다기보다는 그저 말없이 사과를 내민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싶다. 작가는 작품으로서 말하는 법일 테니까.
 
‘Beyond the Apple: Systemized Language’ 전시 전경.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다음 행보는 무엇인가. 구상 중인 신작이나 예정된 활동 계획이 있으면 알려 달라. 
 
곧 열리는 ‘키아프(KIAF)’에 출전한다. 같은 기간 파리 카루젤 드 루브르에서 열리는 ‘포커스 아트페어’에도 출품한다. 이어서 광주 5.18 민주광장 빛의 분수대에서 ‘허밍 시리즈’ 미디어 파사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아울러, 10월 중에는 자전적인 이야기와 나의 감상을 담은 에세이집을 출간한다.
 
─끝으로 자기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 내린다면.
 
‘희망’이다. 비극의 순간에도 절대 무너지지 말길 기원하는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가 내 작품에는 항상 자리하고 있다. 내 또 다른 작품 연작명 ‘Piece of Hope’처럼 말이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