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7.22 21:30
[인터뷰]
캐린 카람 아트시 글로벌 세일즈 앤 파트너십 부사장
팬데믹을 기점으로 미술시장의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미술작품을 구매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그 흐름을 선도한 주요한 미술품 거래 플랫폼 중 하나인 ‘아트시(Artsy.net)’에 따르면 한국의 온라인 아트마켓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캐린 카람(Carine Karam) 아트시 글로벌 세일즈 앤 파트너십 부사장으로부터 급성장 중인 온라인 미술시장의 현주소에 대해 들어봤다.

─럭셔리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 등에 근무하다가 아트시에는 2020년 합류했다.
럭셔리 패션 세컨핸즈 거래 플랫폼에서 매니징 디렉터로 오래 근무하다가 개인적인 타임오프를 위해 2년간 여행을 다니기도 하며 휴식을 즐겼다. 그러던 중, 생각지 못한 팬데믹이 시작됐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가을, 우연히 아트시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안 받게 됐다. 아트시 이전에는 아트씬에서 일해 본 적은 없지만 미술은 나의 대학시절부터 언제나 큰 관심사 중 하나였던 나는 그 제안이 너무도 반가웠다.
─아트와 럭셔리, 이 둘은 대체로 값비싸며 애호가(사용자 혹은 컬렉터)와 비애호가가 확실히 나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두 분야를 모두 경험했는데, 이 둘은 어떻게 비슷하고 또 어떻게 다른가.
두 업종은 서로 상당 부분을 교집합으로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일례로, 내가 온라인 럭셔리 월드에 발을 들일 때만 해도 누구도 하이엔드 보석이나 시계 등을 온라인에서 구매하려고 하지 않았다. 값비싼 물건을 실제로 보지 않고, 만져보지도 않고 인터넷에서 버튼 하나로 구매하는 것은 쉽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아트와 럭셔리 모두 온라인에서 활발히 거래되기까지 시간이 걸렸으며, 특히 높은 가격의 작품을 사고파는 것에 주저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지닌다. 사실 아트야말로 온라인시장에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분야가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구찌는 온라인 판매를 처음 시작한 럭셔리 브랜드 중 하나인데, 온라인 활로를 개척하며 실제 그들의 매출이 급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미술계와 패션계는 많이 다르기도 하다. 작품에 있어서 유니크 피스는 말 그대로 한 점만 존재한다. 애초에 미술계는 대량 산업화된 곳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아트와 럭셔리 각각의 고객층은 어떠한가. 럭셔리를 구매하는 이가 아트를 구매하나.
좋은 질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부분을 꼭 짚고 싶었다. 럭셔리를 구매하는 이들이 미술품까지 구매할 확률이 높을 거라 짐작될 수 있지만, 실상은 처참하다. 럭셔리 구매자의 단 2%만이 미술품을 구매한다. 20%도 아니다. 고가의 핸드백, 신발, 보석을 사는 데 돈을 쓰는 이들의 98%는 미술품을 사보지 않았다는 것인데, 참으로 안타깝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크고 아름다운 집에 투자한다고 해도 아트에는 소비하지 않는다니 말이다.
다만, 그들이 예술품이 싫어서 구매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단지 어떻게 사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들은 예술품을 구매하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디서 구매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
예술을 대중화하고 언제든 원하면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트시의 모토이기도 하다. 아트시는 첫 입문자부터 전문 컬렉터까지 각각 맞춰 도울 수 있는 자문팀을 운영하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을 미술품 거래시장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미술가들이 작품을 지속적으로 제작할 수 있을 테고, 또 이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더욱 많은 미술가들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진 블루칩 작가들과 더불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아티스트들이 무궁무진하다. 미술시장은 공급에는 문제가 없고 수요에만 문제가 있는 시장인 셈이다. 다시 말해, 이 산업이 얼마나 많은 기회와 엄청난 가능성을 지닌 시장인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솔직히 나도 아트시 합류 이전에는 미술품 수집을 할 생각을 해보진 않았다. 대신 모든 돈을 내 옷장에 쏟아부은 것 같다.(웃음) 그런데 그렇게 돈을 투자했지만 정작 그 옷들은 더 이상 입지도, 그 가방들은 들지도 않는다. 만일 그게 미술품이었다면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가치가 올라갔을 수도 있지 않겠나.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보고 즐길 작품이 있다는 사실에 참 즐거웠을 것 같다.

─갤러리에서 작품을 사는 사람이 온라인에서도 작품을 구매한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그저 다른 두 스타일의 컬렉터가 존재한다고 보는지.
서로 다른 두 타입이 명료하게 갈린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오프라인보다도 온라인에서 구매한, 또 앞으로 구매할 컬렉터들이 훨씬 많다는 것은 자명하다. 예를 들어, 온라인 판매 활로가 없는 갤러리는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방문자에 의존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을 것이고, 이에 그 갤러리는 자연스레 여러 선택지를 갖지 못하게 된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작품을 구매한 적이 있는 이들 중 갤러리에 직접 방문해 작품을 구입해보지 않은 이들이 굉장히 많다. 얼굴을 맞대고 가격을 묻거나 어떠한 컬렉션을 가졌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일련의 과정이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온라인에서 구매하면 누구와 이야기 나눌 필요가 없다. 수백, 수천 점의 작품을 한 번에 둘러보고, 구매까지도 원한다면 버튼 클릭만으로 가능하다. 온라인 아트마켓이 미술산업이 성장하는 것보다도 더욱 가파르게 커지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트시의 주 고객층은 누구인가. 누가 아트시에서 작품을 구입하나.
아트시에서 작품을 거래하는 이들 대부분은 35세부터 54세로, 미술계에서 이 나이대의 수집가는 다른 연령대보다도 더 많은 비용을 아트 컬렉팅에 투자하는 젊고 새로운 컬렉터로 통용된다.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시대다. 온라인에서만 보고 집을 사는 이들부터 자동차, 보석은 물론, 음식도 온라인에서 주문한다. 새로운 컬렉터를 지속적으로 유입시켜야 궁극적으로 미술산업 역시 성장할 수 있는 법인데, 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실마리는 바로 온라인인 것이다.
물론, 팬데믹이 온라인 미술시장의 성장을 10년은 더 빠르게 발전시켰다. 예상하지 못한 힘든 시기를 거치며 갤러리는 디지털 전략 또한 함께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많은 갤러리들이 문을 닫아야 했고 메가 아트페어들조차도 줄줄이 취소됐던 때가 있지 않았나. 그러면서도 아트시와 파트너를 맺고 있는 많은 이들은 이때 온라인 판매를 통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팬데믹을 거치며 한국 미술시장 또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지난 3년여 동안 아트시 매출은 무려 200% 증가했고 한국 파트너 갤러리의 수는 2배 늘었다. 현재 글로벌 아트씬의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은 그야말로 지대하다. 한국 미술시장의 성장 양상은 지금껏 누구도 보지 못한 방식과 형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컬렉터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고 이들 중에는 투자를 목적으로 접근하거나 혹은 미술에 대한 순수한 관심으로 뛰어든 이들도 있다. 그 성장에 힘입어 프리즈(Frieze)도 서울에 진출하지 않던가. 그리고 지난 5월 열린 아트부산과 당시 파트너십을 맺고 아트시에 출품작을 볼 수 있도록 했는데, 이에 대한 트래픽이 아트시와 함께 협업한 아트페어들 중 두 번째로 높았을 만큼 미술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엄청났다.
─아트시에서 거래 중인 작품 상당수는 정확한 금액을 명시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갤러리들이 작품가를 공개하는 것을 마치 금기시하듯 꺼렸는데, 가격이야말로 고객이 가장 원하는 정보 아닌가.
그렇다. 온라인은커녕 직접 방문한 이들에게조차 가격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갤러리도 많았다. 아트시는 컬렉터들을 대상으로 연간 설문을 진행해오고 있는데, 이들로부터 언제나 제기되는 가장 큰 불만 사항이 바로 가격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마치 오랜 관행처럼 가격을 표시해놓지 않은 것에 대해 컬렉터들, 특히 온라인 컬렉터들은 여전히 매우 불만족스러워하고 있다. 차세대 컬렉터들을 고객으로 유입시키기 위해서는 더는 기존 방식으로는 어렵다. 대체 숨길 것이 뭐가 있나. 작품가를 공개하면 가격을 표기하지 않았을 때보다 판매율이 6배가 높아진다는 우리 자체 통계가 있다.
며칠에 걸쳐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가격이 얼마인지 알아내는 것을 컬렉터들은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거듭해 파트너 갤러리들에게 알리고 있다. 만일 가격이 고시돼 있지 않으면, 고객은 문의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가격이 표시하는 다른 갤러리로 가서 다른 작품을 구매하러 간다. 돈을 주고 구매하면서 그 구매를 위해 어느 컬렉터가 추가적인 일까지 하고 싶어 하겠나.
또한 온라인에서 구매는 더더욱 빨리 이뤄져야 한다. 그들이 내일도 그 작품을 원한다는 보장은 없다. 거듭 말하지만, 온라인 미술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는 옛 방식으로는 온라인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반클리프 아펠의 다이아몬드 반지도 홈페이지에서 얼마든지 가격을 확인할 수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