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으로써 생동하는 한국의 정신성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2.05.19 17:59

[이배]
숯으로 구현한 정체성
개인전 ‘oblique/비스듬히’
7월 3일까지 부산 조현화랑 해운대·달맞이

이배 개인전 ‘oblique/비스듬히’ 전경. /조현화랑
붓질 Brushstroke wo-24, 2022, Charcoal ink on paper, 162x130cm. /조현화랑
 
“숯은 나에게 있어 변하지 않는 바탕이 되고 나의 감성은 손을 빌려 선을 새긴다.”
 
숯과 수묵으로써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배. 그가 숯을 작업의 재료로 택하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1989년 도불해 파리에 터를 잡은 작가에게 당시 자신의 정체성, 나아가 한국의 전통성을 탐구하고 구현해내기란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우연히 숯을 접한 이배는 숯에서 어린 시절 자연을 벗 삼아 뛰놀던 자신을 발견한다. 한국의 자연과 고향 그리고 한국 정서를 함축하고 있는 숯은 이때부터 이배의 작업에서 가장 주요한 소재가 됐다.
 
그의 화면에는 색이 없다. 오로지 흑백으로만 한국의 정신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고결함을 상징하는 문인화의 주된 화제인 사군자를 보아도 난초와 대나무를 굳이 녹색으로 칠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배의 숯덩어리는 무한한 검정의 획이 되고 작품이 놓인 공간은 이를 받쳐주는 여백으로 작동된다. 
 
이배 개인전 ‘oblique/비스듬히’ 전경. /조현화랑
시간성과 신체성 또한 그의 작업에 큰 영역을 차지한다. 이배에게 시간성은 ‘멈춤’이 아닌 ‘지속’과 ‘영속’이다. 숯이 되기 전, 소나무의 수명은 길게는 100년이 넘는데, 나무가 죽어 썩기 전 숯으로 구워지면 그 수명은 수천 년으로 연장된다. 무한한 시간성이 숯에 응축돼 있는 이유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 계속 생동하고 지속되는 태도를 대변하는 오브제이기도 하다. 
 
이배 개인전 ‘oblique/비스듬히’ 전경. /조현화랑
 
이배 개인전 ‘oblique/비스듬히’가 7월 3일까지 부산 조현화랑 해운대·달맞이 두 공간에서 동시 개최된다. 달맞이 공간에는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설치와 오일 파스텔 작업을, 해운대 공간에는 붓질의 시리즈별 작품과 조각, 수채화 작품이 내걸렸다.
 
전시 타이틀 ‘oblique'는 프랑스어로 ‘비스듬히’라는 의미와 함께 무언가를 ‘움직인다’는 뜻의 형용사를 뜻한다. 현대미술을 ‘만남의 과정’이라고 이야기 하는 이배는 자신의 작품이 관객과 작가 사이에서 생동하며 연결하는 역할을 희망해 왔다. 전시장이라는 특수하게 설정된 공간에서 사람들은 현실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세계에 심취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숯으로 한국의 전통성에 대해 일관되고 지속성 있는 태도로 임해온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작가와 함께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다.
 
Issu du feu white Line w-41, 2022, Charcoal on canvas, 302x117cm. /조현화랑
이배 개인전 ‘oblique/비스듬히’ 전경. /조현화랑
 
달맞이 전시장 1층 공간 자체가 캔버스인 것처럼 벽과 바닥을 종이로 씌어서 그림 공간을 설정한 ‘회화 인스톨레이션’을 볼 수 있다. 관람객은 그림의 무대인 종이 위에 올라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으며, 전시장 환경의 섬세함을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다. 아울러, 달맞이 2층에 설치된 ‘불로부터(Issu du feu white line)’도 눈여겨봄 직하다.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메마른 검정 숯으로 화면을 만들고 그 위에 오일 파스텔을 활용해 흰 선을 그린 작품이다.
 
해운대 전시장은 숯의 형상을 브론즈로 재현한 ‘lssu du feu scrulpture’를 비롯해 드로잉 작업 ‘붓질(Brush stroke)’ 등으로 꾸며졌다. 흑과 백으로 절제된 색을 통해 두 개의 공간을 하나로 연결하며, 회화와 드로잉, 조각, 대형 설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법과 형식으로 공간을 재해석한 신작을 통해 이배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배 개인전 ‘oblique/비스듬히’ 전경. /조현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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